Portugal, Spain, Netherlands, England

Portuguese Republic
Iberia 반도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50만 년 전의 일로 "구석기 시대"부터
Portugal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발견된 최초의 인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약 5,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에 지중해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
되었다는 것으로 "철기 시대"에 북부 지역에 발생한"요새
문화"
는 이 후 Iberia 반도 문화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Iberia 반도에 가장 먼저 거주한
민족은 Africa 북부 지역으로부터 Ibero-
People으로 보이며, BC 12 C Phoenicia, BC
7-6 C Carthage People, Greece People들이...
나타났으며, 특징적으로 Greece Hellenism
문화가 전파 되었다. BC 750년경에 현재의 France에
해당하는 지역으로부터 Celt 족이 Iberia 반도에
정착되면서 원주민과의 혼합으로Celt-Iberia People
생겨나 이들이 현재의 Portugal 국민의 원조(Lusitania)가 되었다.

Old Man...
Antonio Chainho  Fado
초기에 산이 많은 북부 지방에서
목축을 주로하며 정착한 이들은 평야가
많은 남부 지방을 지배한 Greece, Phoenicia,
Carthage
같은 지중해 문명에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지만 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The Roman Empire으로 BC 2 C / Caesar & Augustus의
원정으로 Iberia 반도가 The Roman에 편입되면서
Romanizacao(로마 화)가 시작되었다. 당시 !! 지중해에서
세력 확장과 상권을 놓고, Carthage... 전쟁(Third Punic War)
치루며 Roman과 적대관계에 있던 Carthage가 Iberia 반도에
제국 건설을 하며, 정치적 안정을 위협 받게 되자 Roman은
원주민이기도 한 "루지따니아인들..."을 지원한다. 이 후 전쟁에서
승리하며, 당연히 물러갈 것 같았던 Roman 군대는 철수를 하지 않고
결국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는데 대략 150년 간 지속된 점령이 시작된 것이었다. →193-25

점령 후 Iberia 반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는데 이때 기존의 종족(원주민)이
급속도로 Roman에 동화되는 과정에 놓이게
되었다. "루지따니아인들..."들 역시 이러한
Romanizacao 과정 속에서 자신들의 고유한 관습,
대신 새로운 생활을 받아들이는 능동적 모습을
보이며, 언어, 행정, 종교, 도시의 건설, 농경 양식,
생활양식 등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언어의
동화가 가장 두드러져 Roman에 의해 "Latin 속어"
Latin VulgarPortugal Latin Alphabet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Roman Empire의 지배는
5 C 초부터 German 민족의 침공으로
점차 물러가게 되었으나 "야만족"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분열하면서 또 다른 German
민족(서고트 족)이 Iberia 반도를 사실 상 점령하며,
통일된다.→586 또한 Moor People이라 불리던
Islam 세력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Roman 대신 Iberia
반도를 지배당하게 된다. 보잘 것 없는 문명국이던
German(서고트 족)은 무력으로 Iberia 반도를 진입하고
있어도 개종하는 등 문화적, 종교적 사회 구조로는
Roman의 문명에 오히려 흡수되었기에 이 시기 Roman
문명의 영향은 지속되었으며, 8 C Iberia 반도를 점령한
Moor People = Muslim들은 13 C 중반 Iberia 반도
Granada(그라나다)로 패퇴하기 전까지 거의 6 C 동안
Iberia 반도를 거의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커다란 자취를 남기게 된다.
Woman Writing at a Table
Portugal Woman
따라서 Portugal의 주류를 이루는
민족은 지중해 민족과 Latin 계 민족의
특성이 혼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세는 Moor People = Muslim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럽인들의 평균 신장 보다 작은 편이고,
갈색 눈에 역시 갈색, 검은 머리 가무잡잡한 피부 등
지중해 민족과 유사해 전체적으로 지중해 특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12 C 건국 후 13 C부터 현재의 영토 보존 !!

민족의 특성으로는 유럽의
어느 민족보다 동질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데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접하면서 강인하고 깊은 뿌리를 가진
국민성과 타인에게 친절한 민족성이 형성
되었다. 같은 Latin 계 민족, 이웃 Spain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Spain은 정열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국민이 시끄럽고, 외향적이고 격정적인데
반하여 Portugal 사람들은 "희로애락"을 잘 드러
내지 않은 성격으로 내성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대체로
친절하고 온화한 태도를 보이지만 느슨한 시간 개념과
즉흥적인 면이 강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고, 무슨 일이
닥쳐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갑작스런 일이
생겨도 거의 즉흥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일 때가 흔하다.
건국 초기 Spain과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 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친 바다를 정복하며, 전 세계를 다녔던 경험으로 인해
매우 용감하며, 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높다. 이러한 점은 전반적으로
온순해 보이는 면과는다른 면이다. 아마 !! 이러한 성격은 온난하고
평온한 "지중해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Renaissance(15-16 C) 전후로
유럽 각국은 방법상의 차이를 갖고
있었으나 지배 권력이 대규모 영토를
소유한 자에게 유래하는 사회, 정치, 경제
"봉건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봉건제도 하에서
일반적으로 사회는 농업에 전념하는 봉토
소유한 영주(Senhor / Feudal)와 귀족, 성직자,
직업 군인, 상인 가내 수공업자, 농민들로 구성되는
자유민 및 농노로 구성되는 체계를 이루고 있었는데
농노들은 자신들에게 농지를 영구 임대해 주고
군사적 보호를 약속한 영주 소유의 농토 일부를 경작
하였으며, 그 땅은 자신의 사후 에도 영주들의 동의하에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영주로부터 명령에
의해 영지에서 쫓겨 날 수도 있었는데 영주는 대 저택에서
거주하며 한 개 이상의 영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이들의 일은
영지를 관리하고 특별한 경우 전쟁을 치루는 것 이외에 주로
사냥과 사치스런 활동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
"십자군"원정을 통해 동방의 문물이 전해지고 그에 따라 해외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Middle Class People(중산계급)
형성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는데 점차로 Portugal을
포함한 "중세 봉건 사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중산 계급은
당시 동방의 특산물을 들여오던 유일한 해외 연락 창구인 동시에
지중해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해상로이기도 한 "Red Sea,
Persia Gulf"
그리고 육로인 "Central Asia"를 통한 3개의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Bairro Alto, Lisboa
동방과의 무역으로 Constantinople
= Istanbul & Alexandria
는 동방의 최대
무역항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동방과 유럽의
중계 무역을 하던 Italy Venice & Genova는 서양의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급부상하였다. "국제 무역"의
활성화와 더불어 "항해술"도 급격히 발전을 보이기 시작
하였고 특히 "나침반" 사용은 유럽인들에게 보다 완벽하고,
활력적인 항해를 가능하도록 하였다. 유럽에서의
나침반은 이미 기원전에 존재하였던 "China의 나침반"
Muslim 들을 통하여 전달되면서 보다 완벽한 형태로 개발되어
발전된 것이었다. 이것의 사용으로 더 이상 해안을 따라
혹은 별의 움직임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항해술"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또한 각종 "화약사용과 기계"
발명, 조선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해양진출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지중해 지역이나
유럽 해안 지역에 머물던 항해도 멀리 대서양
까지 진출하게 됨에 따라 전통적으로 "노"에만
의존하던 선박은 자취를 감추고, 대서양 진출로 오랜
항해와 대규모 물자 수송이 가능한 선박의 형태로 진화되어간다.

거센 대양의 풍파를 견딜 수 있도록
하다 보니 완벽한 선박으로써 건조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시기부터 각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삼각 혹은
사각 돛을 단 선박의 개발이 가능해졌다. →조선술의 획기적 진보 !!

이외에 "지도 제작"과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천측기기 들도 보다 더 정밀하게
만들어져 "항해술"의 발전을 더욱 진보 시킬 수
있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Portugal은 일약
독립국이라는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유럽
대륙 끝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유럽의 중앙으로
진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작용되었다. 그러나 지리적
환경 자체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많은 외국의
무역선이 드나드는 항구가 일찍이 발달되어 있는데다가
"왕위 계승 전쟁"에서 무역 상인의 협력으로 왕위를 쟁취한
"John 1세"가 비교적 상인 등의 중산계급 의견을 받아
들여 바다를 통한 해외 진출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이와
함께 Lisbon을 Arabian들로부터 공략하는데 "십자군의 원조"
받았기 때문에 해외진출은 Portugal에 있어서 하나의
"십자군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대서양을 통한 신비로운
신세계를 향한 진취적인 기상은 이러한 그들의 의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 것이다. 이때 John 1세의 아들이며 항해 왕자라고
불리던 Henrique는 Portugal의 해외 진출을 구체적으로 준비해왔던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Streets of Lisbon
Portugal Train
Portugal Lisbon

Henrique는 항해 학교를 설립
하였고 항해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수집하며, 수학자, 지도학자, 항해 기술자
등의 항해 관련 전문가를 육성하였고,
왕실에서도 선박의 건조 및 해외 무역에
대한 각종 혜택과 장려 정책을 적극적인 추진
하였고, 이러한 Henrique 왕자의 개인적인
활동과 "Portugal 왕국"의 해외 진출의 꿈 그리고
현실적인 노력들은 확실하게 해외 영토 확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것은 곧 !! 당시 동양과 서양을
연결시켜 주던 Constantinople = Turk People에 의해
무력으로 점령(1453) 되기 이전인 North Africa
Ceuta(세우타, 1415)를 정복함으로써 현실화 되었고,
해안지역에 대한 식민지 확보가 실제적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마지막으로 Portugal로 하여금
Africa진출에 대해 눈을 돌리게 한
가시적인 동기는 무엇보다 당시 !! 근접한
거리에 있던 이 지역의 "금과 흑인 노예"들이었다.
기록에서도 찾아 볼 수 있으나 Portugal이
"해외 영토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초기의
배경에는 무엇보다"흑사병"으로 인한 경제적 피폐와
그로 인한 사회 계층 간의 알력 그리고 농촌 인구의 감소로
인한 곡물 부족 사태와 14-15 C 중반에 걸친 유럽의 Gold
생산의 하락으로 인하여 Moor People = Muslim 들에게는
보고로 알려진 North Africa의 곡물과 "금, 흑인노예"에 있었던 것이다.

14 C 말엽 신세계에 대해
알려진 것은 실제 면적 4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Islam 문명이
이러한 지식의 주 저장고이기도 하였다.
지리적 공백이 15 C에 접어들면서 유럽에
인간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표출되는
Renaissance 시작과 더불어 Islam 세계와
교역을 통해 간접적이고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미지의 세계, 동양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표출
되면서 Portugal People들은 이러한 Renaissance
유럽의 선두 주자로서 새로운 것, 진실 된 것을 추구하기
위해 구세계의 끝을 떠나기 시작하며, 마침내 India에 도착한다. →1498

이후 Portugal은 Spain과
더불어 "발견의 시대 혹은 대항해
시대"
라고 지칭되는 15-16 C 2 C에 걸쳐
유럽 대륙의 정신적, 문화적, 공간적 개방운동을
선도 하였다. 또한 다양한 문화와의 충돌과
새로운 의식을 갖게 된 계기로 작용되었으며,
새로운 땅, 새로운 인간, 새로운 문화 즉 !! 새로운
세계의 발견으로 인류 역사에 새로운 질서가 출현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며, 커다란 영향을 끼친
14-18 C"유럽의 팽창 시대"를 연 첫 번째 단계이기도 하다.

Spices 무역과 인도양의 Sea, Silk
Road
는 이렇게 열리고, 기회의 공간을
창출하였다. 유럽에서는 Rare Wood(희귀 목재)
& Ivory(상아), Texture(직물), Noble Metal(귀금속),
Spice, Chile, Sweetener(감미료), Sugar 등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으며, Portugal은 16 C
이전에는 지중해를 통해 Italy, Arab 상인의
중재 하에 India로부터 유래되던 특산물을 수입하고
있었으나 때문에 동양 즉 !! India와의 직접적인 거래를
위한 접촉은 언제나 Portugal 귀족이나 상인,
밀매업자(해적) 들에게는 커다란 꿈이었다. 향료 및
특산물의 독점적 위치 확보 →자금 확보 중산계급의 개입 = Bourgeois
.
.
.
Portugal Lisbon
Portuguese Guitar Variations
Incorpore o Bacalhau ao Seu Dia-a-Dia
East India Company
Ⓐ Portugal & Spain
정화의 "대 항해"를 마지막으로 이 지역의
제해권을 공개적으로 과시 한지 대략 80년 후
"지리상의 발견"으로 일컬어지는 서구인들의 팽창
정책이 가시화 된다. 이들의 활동은 China의
전통적인 대외 관계뿐만 아니라 향후 세계사의
전개에 있어서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Asia 지역
진출의 서막을 장식한 것은 Portugal이다. Cape of Good Hope
(희망봉)을 경유하여 인도양을 횡단한 뒤 "신 항로" 개발에
성공하였으며, 태평양과 인도양을 경유(1511)하는 교통 요충지
Melaka(말라카) 해역을 점유하면서 효과적으로 대응한다.
Melaka는 "정화 함대"가 매번 거쳐 갔던 동남아 무역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명조의 "조공 무역" 체제에서 중요한 번속 국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 Portugal People 들은 "비단, 도자기 무역"에
종사하던 Chinese 들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들에 의해 광동
해안에 도착하였다. 또한 그들은 복건, 절강 등 동남 연해 지역에서
현지 상인들과 "밀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는데 지방
관리들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Macao(마카오)까지 무역의 거점으로 삼게 된다.

무역 방식은 동남아(인도)에서
싣고 온 향료와 사치스런 구매력을
지니고 있던 "산호, 진주" 등을 중국의
민간 상인들에게 공급하였고 China에서는
Silk & Chinaware를 Galleys(갤리선)에
싣고, Melaka로 운송하여 동남아 각지로 판매
하였다. 이것은 중국을 거점으로 하는 Melaka, India,
China, Portugal을 위시해 상권이 형성하였다는 것으로
Asia 무역 권에 서구인들이 "중계 무역 자"로 등장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무렵 Portugal 중개 무역은 Japan
/ Cipangu(지 팡 구)에 까지 영향력을 갖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동남아 지역에 "왜구(해적)"의 약탈이 극성을 부리자
China "명 정부"는 중일 무역을 금지 하였던 것으로 역사에 기록
되어 있는데 "밀무역"이 성행하고 있던 시기로 이때 Portugal
People들이 전면에 나서게 되고, 이들은 점차로 Macao↔Nagasaki
간의 "생사, 비단, 사향, 약재, 황금"을 운송하여 팔기도 하였고,
회항 시에는 다량의 "백은"을 대량으로 들여와 China에 팔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광석(은)"이 당시 !! 교역 물로서 가능하였다는 것은 China의 법정 화폐
"대명초보"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백은"을 화폐 대용물로 사용하면서
부터로 China(명)의 "은 광산"은 이미 고갈되어 있어 폐광이 속출하였던 시기로 알고 있다.

반면 Japan은 상대적으로 "백은" 생산량이
풍부하였던 시기로 볼 수 있으며(1560), 중계 무역은
동남아 Spices(향료) 그리고 중국 산 Silk(명주)를 유럽에
판매하고 Spain "백은"을 China에 제공하였던 것인데
"대 항해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동서 간의 교역은 대략 지중해에서
중동까지 Venice & Genova 상인이∼ 홍해에서 인도까지∼
중동지역 상인이 점유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15 C 중엽
"Spice Route" 라고 불리던 교역의 중심에 Ottoman Turks = Turkish
Empire가 건설되면서 유럽의 향료 가격이 폭등하였고, 당시 Melaka를
강점한 Portugal은 이곳에서 집적되던 향료를 싼 값에 사들여 “희망봉”을
경유하는 새로운 항로를 통해 이러한 것들을 안정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유럽의 "Spicces Market"을 독점하게 된다. 한편 America 대륙으로 식민지를
넓혀가던 Spain은 세계 최대 "백은 광산"인 Bolivia Potosi Mining Town을
개발하였는데 이곳은 전 세계 "은" 생산량의 60 %를 차지하게 된다. 이처럼
장기적인 "은"의 대량 유입은 Spain 물가를 상승시켰으며,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유럽 주변국들의 물품이 Spain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낳게 하였다. 또한
지리적으로 근접되어 있던 Portugal은 Asia에서 가져온 향료를 Spain에 팔아
넘김으로써 자연스럽게 대량의 확보할 수 있었으며, 더욱이 Spain의 America
대륙 진출을 계기로 전파된 "흑사병, 천연두" 등의 새로운 전염병에 의해 Indio들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사망하자 이때부터 Africa"서안 출신"의 "흑인 노예"들을
공급하는 노예무역 까지 손을 댐으로써 더 많은 "백은"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6 C Spain "은 광산"
Bolivia / Potosi(포토시)
Mexico / Zacatecas(자카테카스), Guanajuato(구아나후아토)


이처럼 16 C Portugal은 Asia 무역 권의
절대적인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활동은 Asia 무역권의 활성 화 뿐만 아니라 지역의
경제권을 세계 경제와 직접적으로 연계 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세계의 일체화 진행 !!)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미 !! Portugal이 중국과 중계 무역을 통해서 많은 수익을
가져갔던 배경에서 Spain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것은 역시 !! "백은"에 있었다. 앞서 설명되었듯이 China은
"은"을 통화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사용량은 엄청난 물량이라고
할 수 있는데 Japan의 "은 광산"에 의지하던 Portugal과 달리 South-
America(Inca Empire = Bolivia) 광산에서 "은 광산"을 확보하고
있던 Spain은 China 황실 입장에서도 매력적으로 접근 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지 Portugal은 Philippines Manila를 정점으로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China의 "해금 정책"이 해제(1567) 되면서 복건,
장주를 중심으로 무역이 증가하고 수요에 따라 Chinese들의 Philippines
이주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Melaka"를 중심으로 중계무역을 하던
Portugal과는 달리 Spain은 Philippines Manila을 거점으로 태평양 건너 식민
지역 까지 무역을 확대 하였던 시기로 "대륙 간 무역의 초기단계"라 확인 할 수 있다.

Spain People 들은 Portugal에서
확보한 "은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은)
으로 물품의 "대금결제"를 하였다고 한다.
17 C 초기 China & Spain의 무역이 활성화
되었던 시기에는 매년 5,800-8,600 kg의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오죽하였으면
China People 들이 Spain 국왕을 "백은의 왕"이라고
말 하였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자본주의의 맹아기

이러한 사실로 알 수 있는 것은
해가지지 않았던 Spain의 팽창 정책의
힘이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단편
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China ↔ Spain
↔ Peru
(대륙 간 무역) 핵심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Portugal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Spain이 Portugal의
교역 Route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인데 그 이유는
Mexico = Empire of Aztec에서 직접 태평양을 건너와
Manila를 "중계기지"로 삼았던 교역이 가능하였다는 사실로서
인도양, 대서양과는 다른 새로운 무역선의 연결을 의미하게 된다. →Columbus의 발견

"Silk & Chinaware" 팔아서
대규모의 "백은" 축적 !! 생사, 도자기,
견직물 ↔ 식민지에는 생필품 위주로 거래 !!
Blackswan
Compass
Ⓑ Netherlands & England
Asia 지역에 진출하여 전통적인 정치,
경제계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던 국가는
Netherlands이다. Spain의 "속지"이었던...
Netherlands는 16 C 말엽부터 대다수 유럽
국가들이 그러 했듯이 "상업 혁명"에 성공하면서
신장된 경제력을 기반으로 Spain 통치하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당시 Spain & Portugal을 통치
하였던 Felipe 2세는 Netherlands 선박들이 양국의
항구로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상업도시
Amsterdam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무역망이 쇠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Netherlands가 직접적으로 Asia
항로에 개입하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Asia로
항해한 것은 Portugal이 장악하고 있던 "희망봉"
남쪽으로 한참 우회한 뒤 다음해 Java In Bantam(반탐)에
이른 것이 최초인데 3년 뒤에는 함대를 거느리고, 대량의 향료를
싣고 와서 100 % 이상의 이윤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에
고무되어 본격적으로 Netherlands의 개입이 이루어졌다. →"왕실과 자본가"들의 지원 확충 !!

또한 동남아 무역 권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East India Company"
설립하고 Jakarta(=Batavia)라는 "식민지"
건설에 성공하기도 하는데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하여 Spices & Sugarcane
등의 "환금 작물"을 독점하고자 하였다. 바야흐로 이때
새로운 현상으로 화교 상인집단이 등장하면서 경제적...
Middle Man(중간 인) 역할을 하며, 화교 상인은 경제적 착취자의
모습으로 각인되었고, 먼 훗날 종족 간의 갈등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이들에 의해 자본을 형성하고 유통망을
장악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동남아 지역의 경제적 실권자로
남게 된 단초를 제공한다. 이처럼... Netherlands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China 무역을 선점하고 있던 Spain & Portugal에게는
성가신 존재였을 것이다. 하지만 Netherlands는 "선박 제조 술과 항해술"
에 있어서 양국을 압도하고 있었던 관계로 다소 방어적인일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거점 지 Macao를
Netherlands가 공격을 감행하면서 이 지역의 아픈 역사들이
다수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Batavia 함대 출격, Macao 공격→ 1622

결과적으로 실패한 전쟁이었으나
Netherlands는 집요하였다. China 연안을
항해하던 Spain & Portugal 선박(상선)에 대한
공격과 물자를 약탈하였으며, 양국의 연합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도 심지어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Philippines
열도 자체를 봉쇄하기도 한다. 좌충우돌 Netherlands의
무역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한 High-Kick은 지속되었으며,
Spain & Portugal의 만만치 않은 저항으로 China 연안 근거지
확보에 실패한 Netherlands는 한때는 "팽호제도(澎湖諸島)"를 점거
하고 방어진지를 구축에 성공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China에 예속
되어 있었기에 China 군대가 파견되었고, 이에 협상이 이루어지면서
Netherlands가 철수하여 China에 예속되어 있지 않았던 "대만"을 강점하기에 이른다. →1627

대만 원주민에 의해
붉은 수염의 오랑캐라고 불리며,
"정성공"이 반청복명 운동의 기지로
삼기위해 이곳까지 오기 전 39년 간 지배하였다.
Netherlands Windmill
Netherlands의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중국과 Iberia 반도의 교역량은 크게 감소
하게 되었지만 반면에 Netherlands 또한 무역
거점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교역에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낸 상태가 지속되었다. 따라서
"상품"China & Batavia를 오가던 "복건 해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취득해야만 하였는데 생사, 견직물,
도자기, 특히 생사의 경우 Amsterdam 시장에
수출되었을 때에는 320 %의 수익을 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가격이 우수하고 품질이
우수하였기 때문으로 Netherlands의
교역 품 중에서 동남아 산 Spices는 중국
산 견직물과 함께 중계무역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상품이었다. 또한 상당량의 Spain
"백은"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Chinese 들과
교역을 할 때에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Spain "백은"으로
거래되었다고 하며, 후추, 상아, 연와, 단향도
"청 정부"가 허가한 상인을 통해서만 교역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금 령의 해제(16 C)로 China 해상을
거점으로 Sea, Silk Road는 점차로 활성화
되었고 17 C에 이르러 한 차례의 위기 상황을
맞게 된다. China 본토에서는 노쇠한 "명 제국"
멸망시키며, 북경을 수도로 하는 "청(1636-1911)" 이
건국되면서 "반청복명"의 기치아래 정성공의 움직임까지
가세하여 점차로 복잡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던 시기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청의 "순치제"는 연안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동시키고, 산동에서 광동에 이르는 주요
지역에 성과 보루를 쌓아 방비하는 전대미문의 "천계 령"을
반포한다. →1661 그렇지만 이러한 "강제적 교역 금지령"이 30년간
시행됨으로써 경제적 불황이 전국을 덮치며 망국으로 접어들게 된다.

앞서 설명되었듯이 이미
China은 "백은" 경제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상황에서 Portugal,
Spain, Netherlands를 통해 교역하던
막대한 양의 "백은"의 유입이 어려워지자
(공급정체 !!)경제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시기 공교롭게도 Sea, Silk Road 해상에
강력한 새로운 강자가 진입하게 되는데 그것은 England이었다. →1684
Bearing Compass
사실 !! Portugal이 Asia 진출을 가시화
시킨 이래 바다를 통한 China의 교역은 서서히
"자본주의"체제라는 새로운 Paradigm 속에 지배 받게
되었던 것으로 할 수 있으나 중국은 여전히 "천조"를 자칭
하며 종주국 행세를 하며, 폐쇄적인 System을 이어갔다. 또한
무역도 제한되어 있어서 서양 상인들은 광동 성의 광주
한군데서 그것도 청 정부가 허가한 상인 Guild 조직인 "공행"
통해서만 교역할 수 있었다. 따라서 England는 폐쇄적인 무역
체제를 타파하고, 통상을 확대하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게 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반응뿐이었으며, 당시 !! 황제 "건륭제"
George 2세에게 China은 물산이 풍부하여 없는 것이 없으니 원래부터
외부 이족들과 물자교류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답을 하게 된다. 또한 "가 경제"
때에는 사절단에게 3번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에 9회 찧는"三拜九叩頭
(삼배구고두)"
라는 황제 알현 식을 요구해 결국 의견도 제시하지 못한 채
돌아와야만 하였다. 산업혁명이 불같이 일어나고 국제 관계가 급변하던 시기에
China의 황제는 여전히 자국 중심의 천하 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Opium Smoker
Opium Poppy, Makowiec
Turning Point
아편 전쟁 배경 !!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아편"이었으나 일차적으로 China
Tea(홍차)와 관련이 깊다. Tea
(홍차)
가 극소량 England에 전해진
직 후 100년의 세월이 지나오면서
Tea(홍차)는 England의 "Drink"가 되었고
19 C 초에는 매년 13만 kg이 넘는 Tea
Leaves가 England에 수입되었다. →무역 적자 누적
The American Civil War
.
.
.

더구나... England는United States-
War of Independence
(독립 전쟁 = 혁명)
이 후 "백은"의 조달이 어려워졌는데 이에 따라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Bengal 지역에서 생산
되던 아편을 은밀히 China에 수출하고 있었다. 이것은
국민 건강과 국가 기강을 저해하는 요소로 등장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 무역 수지에도 역전을 일으켜
"백은"이 급속도로 유출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결국
청조는 "임칙서"를 황제 특사로 광동에 파견하였고 "임칙서"는
외국 상인들의 아편까지 전량 수거하여 녹여버렸다. China 시장의
개방을 애타게 원하던 England의 산업 자본가들은 이러한
행위가 자유 무역에 위반될 뿐 아니라 사유재산 침해로 규정하고
의회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England의 원정군
파견 결정이 이뤄졌으며,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Asia의 노 제국
China은 England의 신식 무기 앞에 처참하게 무너지고 결국
"홍콩할양"과 "상해를 위시한 5개 항구"의 "개항 관세 자 주권 포기,
전비 배상" 등
영국 측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는 조건으로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다.

청의 개방으로 당시 England People
들은 상당한 기대를 갖게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좀처럼 교역을 확대하지 못했다. 청조에는
여전히 폐쇄적인 제도가 존재하여 무역 장애
요인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France, America,
Russia 등과 연합하여 수시로 청 정부를 압박하는데
결국 이들에 의해 분할되었으며 반-식민지 상태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역사는 도도하게 흐르게 되었다.
Felix Beato (English, Active In Japan 1869 - 1877)
Opium Poppy
.
.
.
Spices
식용 식물을 찾는 과정에서...
"원시인"들이 현재 우리에게 Spice을
제공해주는 일정 부분의 식물들 역시 발견
했을 것이 틀림없으며, 또한 이들 향료 성 식물
들은 조금 더 입맛에 맞게 극성기를 지닌 식품의
"맛과 향"을 보충하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Spices 식품 가운데 의도적인 재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나타났고, Roma People들과 함께
Spices가 Food의 예술 속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잡게 되었다.
Marco Polo의 설명은 유럽인들에게 극동의 풍부한
Spices에 대해 알려주었고, 15-16 C "대항해 시대"가 열린 것도
이들 Spices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일부 작용한 것은 틀림없을 듯 싶다.

사실 영양적으로 별...
필요가 없지만 Spices는
먹는 즐거움을 줄 때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참고적으로 오늘날...
Spices 중 수적으로 가장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Labiatae
(꿀 풀과) & Umbelliferae(미나리과)이다.

Labiatae
Basil, Marjonaram,
Oregano, Rosemary, Sage, Mint...
Umbelliferae
Anise, Caraway, Celery,
Chervil, Coriander, Cumin, Dill, Parslery, Fennel...

Orchidaceae
Vanilla Planifolia

"난초과"는 수적으로 식물의
왕국에서 최대의 분포를 보이지만
식품에 세련미를 더해주는 것도 오직
하나의 종으로 Vanilla Planifolia(바닐라 난초)
의 꼬투리에서 나온다. 이것은 열대 America
원산으로 특히 Madagascar & Mexico 등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지금도 그 향을 얻기 위해 재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Vanilla Pod 향은 인공적으로
합성되고 있는 것이 현실적 상황이다.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Spices는 Pepper(후추)이고, 이것이 전
세계 거래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Pepper Tree는
Piperaceae(후추과)의 일원이고, Chili 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Pepper의 재배는 India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유럽과
극동 Asia 사이에서 이뤄진 무역에서
"최초의 물품"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당대의 많은 Spices와 마찬가지로 Pepper는
Food의 Spice와 보존 뿐 아니라 "의약"에서도 널리
쓰였고, Pepper Tree는 덩굴성 식물로서 10 m
이상 성장하기도 한다. 그 열매를 말린 후 갈아서 보통은
Black Pepper로 만들며, 그리고 먼저 껍질을 벗긴
것을 White Pepper라고 한다. 습하고 더운 지역에서(열대)
잘 적응하며, 현재도 세계 공급량 거의 대부분을
India, Indonesia에서 공급하고 있다. 또한 Nutmeg
"환각제"로 악명을 얻은 적이 있었는데 사실 오래전부터
이러한 용도로 이용되어 왔고, 과다복용은 치사에 이를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을 필요가 다분하다. Nutmeg(육두구)는
Malay Peninsula(말레이 반도) 원산 Nutmeg Tree
(Myristica Fragrans)에서 나오며, 지금은 고향은 물론이고
West Indies에서도 재배되고 있으며, 그 씨앗을 가루로 만든 것이
Nutmeg Ground이며... 다시 씨앗의 바깥 부분으로 또 다른 Spices가
되는 것으로 Mace를 만든다. →사용되는 것과 사용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 존재 !! 

Turning Point / Chili & Must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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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DO...Mariza / Transparente

by Beercook | 2007/05/05 01:50 | Storytelling I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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