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ta & Rhodes ...Crusade War & Venezia

Aegean Sea(에게 해)에서
가장 국제화된 곳이며, 한때는
Doria People(도리아)이 살아가면서
인류가 정착(기원전 12 C) 하였던 곳으로
""Homeros"에 등장하는 "고대 도시"가
세워졌던 곳이기도 하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Julius Caesar가 휴양을 왔을 때부터 Italian
들이 욕심을 내었던 섬으로 실제로도 섬을 정복,
한 후 "황폐한 땅"을 다시 재건시키고 새로운 건물들을
건축하였다는 섬이기도 하다. Rhodes 섬은 지리적
여건이 좋아서 Hellenism 시대부터 Roman 시대까지
Asia Minor(소아시아), Africa, Greece, Italy
연결시키는 요충지로 번영하였고, 바다의 Silk Road가
Rhodes 섬을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대 Rhodes는 우수한 Pottery 생산지이기도 하였는데...

Knights Hospitaller Castel
Aegean Sea
Monolithos
기원전 2 C 까지 Rhodes
섬은 The Roman Empire의
동맹국으로서 포교 여행을 나서는
"성 바울"도 이곳에 들렸을 정도로 이후
Roman Christian와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Roman Empire이 분열(395) 되면서 Rhodes
섬은 "동로마 제국 하"에 편입되는 운명을
함께 하게 되는데, Saracen = Islam(654) 세력에
이어서 상업적 도시국가를 이룩한 Venezia People
(1082) 상인들에게 지배를 받게 되는데 "중세 후기"에
이르기 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지배자가 바뀌기도 한다.
또한 Jerusalem(예루살렘)에서 도피한 The Knights-
of st. John(성 요한 기사단)이 유입(1306) 되면서, Seljuk Turk
세력에 의해 쫓겨나기 전까지 이들이... 섬의 주인(1523)이 되기도 하였다.

Osman Turk...
"점령 시대"에는 주민들이 반기
(20 C 초기...)를 들고 일어났지만
Turkey가 물러난 것은 "1차 세계 대전"
이후로... Italy에 의해 Rhodes Island에
점령당하게 되었다. 신시가지는 이 무렵
구성된 것으로 현재 시청사로 사용 되고 있는
"베네치안 고딕 건축"의 건물은 원래 Italy 총독
관저로 사용되던 것이었으며 Rhodes 섬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잠시 Deutschland에 점령
당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꿈에 그리던 Greece로 돌아오게 되었다. →1947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섬"
/ "장미꽃 피는 섬"
이라고 불렸던
Rhodes  Island ...Dodecanes / Δωδεκανησα
(도데카니사 제도)에 위치하며, 고대부터... 
Europe &Asia Minor를 잇는 "교통의 요지"로 번성한 지역이다.
Rhodes Fort Harbour
Rhodes Town
Lindos Acropolis
Rhodes Big Square
Greece Dodecanes는
"12의 섬"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섬이
존재하며 12의 섬이라 함은 Kos(코스),
Kalimnos(칼림노스), Karpathos(칼리파로스),
Patmos(파트모스), Tilos(틸로스), Symi(시미),
Leros(레로스), Astypalea(아스피팔레아),
Nisyros(니시로스), Kassos(카소스), Halki(할키),
Rhodes(로도스)를 말하고, Turkey에 인접되어
있어 "고대부터 교역"이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고대에는
Kamiros(카미로스), Ialyssos(이알리소스), Lindos(린도스)
3대 도시가 건설되었는데 현재까지 도시 형태를
유지하고 남아 있는 것은 Lindos 해변과 Acropolis 유적들로
현재...Rhodes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궁전은 "Knights of -
st Rhodes"
가 사용하였던 곳으로 지금부터 기사단의 탄생을 살펴보자 !!

The Knights of st. John
"교회와 교황"을 우선시 하던
그 시대에 Jerusalem에서 종교적
"동질성을 공유하던 순례자"들을 위해 어떤
부유한 상인이 그들을 돌볼 수 있는
병원 겸 숙박시설(st. John)을 마련하게 되며,
이곳은 점차로 신망과 명성을 얻어갔다. 이때부터...
병원 단체의 조직체(The Knights of st. John)로서
차츰 윤곽을 갖추게 되는데 당시 !! 유일하게 Islam 세력권의
땅에서 Jerusalem을 지키던 기사단으로서 존재하고
상징화되면서 교황은 종교와 군사, 병자 치료에 봉사하는
종교 단체로 공식인정 "백색 십자"가 수놓인 "붉은 색 군기"를 하사한다.
Jerusalem Sunrise
The Knights Hospitaller
Grandmaster of the Order of Saint John

Rhodes Island
Sunset In Rhodes
그 무렵 Jerusalem에서는
Islam 세력과 어떠한 물리적인
충돌 없이 "평화스러운 날"을 지속하고
있었던 시기로 유럽에서는 많은 신도들이
"예수"가 일생을 마쳤던 Palestine(팔레스타인)
지방의 Jerusalem으로 "성지순례의 길"을
무리 없이 떠나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10 C
중엽 "중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던 Seljuk Turk
세력이 급속하게 팽창되면서 11 C 중엽에는
Baghdad(바그다드)를 점령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들은 "성지순례"를 방해하기 시작하는데 이에 위협을
느낀 Byzantine Empire와 마침내 충돌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Byzantine의 "황제가 포로"로 잡히는 굴욕의 순간들이
있었고, Pope Urbanus 2세에게 원조를 요청하게 되면서 파란은 시작되었다.

즉 !! 단순하게 성지를
이교도들로부터 되찾고, Byzantine
교회를 Roman 교회에 병합시킬 절호의
기회를 노리던 교황은 France "Council of-
Clermont(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개최(1095)
하고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을 제창하는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교황의 세치 혀"에 놀아난 제후들과
시대적 배경으로 "봉건적 제도와 상업적 성공"을 기반으로
안정을 이룩한 유럽 사회는 팽창 되어가는 넘치는
힘을 외부로 쏟아낼 필요가 있었단느 사실이다. 그 출발의
시작이 Crusade의 원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또한 세속화
되어 있었던 당시 "교회 / 교황"의 무지함이 작용되었다는
점인데 교황은 성지 Jerusalem을 잃은 비참함과 동방의 "Seljuk
Turk People"
들의 호전성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우며, Islam 과의 전쟁은
성전으로... 참여를 독려하였고, 한편으로는 동방에는 금, 은 보화와 온갖
재화가 널려 있다는 "감언이설"로 제후들을 충동질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신다."

결국 교황의 호소력 있는
열변에 팽팽한 유럽의 힘이
신앙심과 결합되어 대대적인 
Crusade 운동으로 전개되었으며
원정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깨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십자가 표시를 달아
주고 Crusade이라 칭하게 되었는데
어찌되었던 1차 십자군 원정대는 조직
되었고 그들의 대부분은 교황이 바라는 우수한
기사들로 이뤄진 원정대가 아니라 성지를
탈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농민"으로
구성된 "비 정예 오합지졸"의 원정대 이었다.
소위 "군중 십자군"으로 불리던 이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이렇게... "Donau River"을 건너 "The Balkan-
Peninsula(발칸 반도), Constantinople"을 거쳐 Asia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행군 도중 무지한 농민
Crusade"약탈과 겁탈"을 자행
하였으며 목적지에 이르러서는 단번에
Seljuk Turk 군에게 전멸하는 등... 그야말로
"실패를 위한 원정"으로 끝나고 교황에 의해서 곧바로
기병 5천, 보병 1만 오천의 정예 병력이 준비되어
진정한 원정이 이루어지면서 성공적으로 출발되지만
이번에는 내분과 역사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던 잔인한
학살이 끊임없이 자행되며, 우여곡절 끝에 Jerusalem에
도착되어 다행하게도 6주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십자군이 승리한 전쟁(성공적인 원정)으로
마치게 되었다. 이것이 십자군의 1차 출병이었고, 이때...Jerusalem 왕국이
새롭게 건설되고, "왕도 선출"한다. →성지 회복이라는 임무가 달성된 유일한 십자군 원정 !!
Byzantine Empire
Eugène Ferdinand Victor Delacroix

The Knights of st Rhodes

다시 돌아와서∼ 병원의 유지 발전에
만전을 기하고, 자선을 목적을 가진 기사단
으로 출발되었으나 Crusade War 때에는
"군사적인 목적"이 우선한 기사단으로 변신한
초기 Knights of st. John은 서유럽의 귀족 자제들로
구성 되었다. "순결과 청빈, 복종"에 헌신하는
"유일성"을 보여 주기도 하였지만 Jerusalem이 다시
Islam 세력에 의해 넘어가면서 기사단은 Islam
세력들과의 전쟁에서 휘말리게 되었고 고난의 길을
걷게 되는데 평생 결혼을 할 수도∼ 사유 재산을 가질 수도∼
없었던 이들은 "신약 성서의 저자" 중 한 명인 성
요한(st. John)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의료 단체에 더해
군사적인 강렬한 색채를 갖게 되었으나 결국 이러한
사실이 Islam 세력에 결정적으로 쫓겨나듯이
Cyprus(키프로스)를 거쳐 Rhodes 섬으로 물러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Knights of st. John은 Rhodes
섬(1302)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고,
16 C 초기 까지 병원(현재, 고고학 박물관)을
세워 자선 활동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 또한
함대를 내세워 광범위한 교역으로 번영하게 되지만
이곳에서도 Islam 세력들에게 밀려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1522)을 처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Rhodes
섬에서 밀려난 180명의 기사단은 유럽 이곳저곳을 떠돌다
8년 만에 정착하게 되며, 그곳은 지중해 연안 중간에 떠 있는 섬
Malta이다. → 1530 이후 "Napoleon Bonaparte"에 의해
점령될 때가지 기독교를 위해 Islam 세력과 항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Grand Harbour
Azure Window, Gozo, Malta
Valletta
The Knights of st Malta
Malta는 3개의 섬
(Gozo, Comino, Malta)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으로 아름다웠던
장미꽃 피던 섬에서 지내던 기사단에게
Malta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우선 기후와 자연 환경이 다르고 대부분
문맹으로 Arabic Language 사투리를 사용
하던 수많은 Maltese가 살아가던 이곳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여 출발해야만 하였는데 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석회암을 쌓아올려 성을
만들고 바닷가의 "만"을 정비하여 항구를 만드는
등의 노력으로 황무지의 섬을 기사단의 요새로 탄생시켰다.

그 후 30년의 세월이
지나서 기사단은 Turk 세력과
충돌하는데 Rhodes 섬을 떠날 때
기사 단장의 비서관이었던 Jean Parisot de -
La Valette
가 단장이 되어 있었고, 20대
후반이던 그도 이미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가 되어 있었으나 같은 나이의 Sultan에게
Rhodes 섬을 빼앗겼던 청년이 두 번째 대결
에서 Malt를 지켜낸다. 유럽 끝자락 Malta를 요새화
하여 Islam 세력으로부터 지켜낸 기사단은 이때
부터 The Knights of st Malta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불려 지게 되며 Turk와 싸움이 있었던 지역은 당시 !!
기사 단장의 이름을 차용하여 Valletta로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의 Malta의 수도가 된 바로 그 도시를 의미한다.
Harborside Msida Malta
Malta Is An island In The Mediterranean Sea
Malta, Marsaloxx
섬 가장 자리를 향해
좁고 긴 직선도로가 나란히
뻗어 있는 Valletta를 위에서 내려다
보면 영락없는 "바둑판 모양"이다.
"가로와 세로" 정확하게 어긋남 없이
약간의 곡선이나 블록도 허용하지 않을 듯
반듯하게 놓인 길 끝으로 짙은 남색의 지중해가
눈에 가득 들어오는데 바다를 향해 곱게
뻗은 거리 덕에 어느 위치에서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며, 적의 침입 여부를 알 수 있도록
도시 설계가 완벽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사단의
성당(st. John`s Co-Cathedral)과 기사 단장이 거주
하던 공관(Grand Master`s Palace)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기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Main Street
에서도 중간쯤 성 요한 성당(st. John`s Co-Cathedral)이 위치하고 있다.

16 C 후반에 지어진 낡은
성당은 그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성당의 외관은 오랜 세월과
비례하여 고풍스럽고 빛이 바랜 모습을
보이지만 내부의 화려함만큼은 여전하다. 기둥
혹은 바닥, 천장의 세밀한 조각과 화려한 마블 문양의
그림도 Baroque 양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성당 양옆으로는 기사들의 예배 실이 Aragon, Portugal,
Italy
등의 나라별로 구분되어 있고 역대 기사단장의
묘도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 특히 천장화는 천장뿐만 아니라
기둥과 천장의 돔이 연결되는 부분까지 이어지는데 그림
자체의 음영의 효과를 생각해 그려진 때문인지 기둥과 기둥 사이의
작은 창에 의해 실제로 그림자가 생긴 것처럼 보인다. 성당을
나와서 바다를 향해 조금만 걷게 되면 기사단의 단장이 기거하던
기사단장의 공관(Grand Master Palace)에 이르게 되며,
현재 Malta 대통령의 집무실과 Reception Room으로 사용되고 있다.
The Gates of The Knights of Malta
Freedom Square
Mdina is a Historic Walled Medieval City
Barracca 정원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Three City는 굳이
도시라고 부를 만큼 크지는
않지만 바다 쪽으로 길쭉하게 나온
Birgu(빌구)라는 이름으로도 통용되는
Vittoriosa(비토리오사), Senglea(셍그리아),
Cospisua(코스피쿠아)
3개의 "만"을 합쳐
Three City라고 부른다. 기사들이 Malta에 정착
하였을 당시 Valletta가 귀족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면
Three City에는 군사들의 주거지로 형성되었다.
이 지역이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Malta의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2차 세계
대전 때 건물의 80 %이상 파괴되어 재건축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낮의 수도 / Valletta,
밤의 수도 / Saint Julian`s(세인트 줄리앙)

Valetta, Malta
Valetta, Malta
Saint Julian`s에는 5성급
Hotel이 몰려 있기도 하지만...
Hotel을 중심으로 Restaurant, Bar,
Pub, Inter Cafe
등 여행에 필요한
것들이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Malta는
전적으로 관광 산업에 의존해 살아가는데 지진과
자연재해, 전쟁의 현장이었던 유럽에 비해
유물의 수준이나 보존 정도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으며 Malt에서 유럽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배세력이 유럽 귀족의 자제 출신들인 "성 요한 기사단"
이었고 기사단이 Malta를 떠난 이후에도 "Napoleon
Bonaparte
"가 이끄는 France 군대가 섬에 거주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England의 지배하에 있었던
관계로 Malta는 전반적으로 짙은 유럽의 색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지정학적으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유럽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현재 Malta를 찾는
대부분의 여행들 또한 European 들이다. →중세 유적이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는 곳

참고로... Malta에 남아 있는 초기의
고고학적 유적은 BC 38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대표적으로 한때 Phoenicia People
들의 취락의 증거로 여겨졌던 거석 유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밝혀져서 사실상 지중해지역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The Villiage of Marsaxlokk
St Pauls Catacombs
The Upper Barracca Garden
Mdina
고고학계에서는
England Stonehenge
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한다. 또한 8 C 혹은
7 C 초에 Carthage People이 섬에
상륙한 증거가 남아 있으며, 이들은...
섬 주민을 가혹하게 지배하게 되는데 많은
공물을 징수했던 것으로 보이고, Roman
(BC 218)
의 지배하에 있었던 적도 있고
이때 부터는 "자치도시의 특권"을 부여받기도 하였다.

The Limestone Heritage
"신석기 시대"의 유물이 대거 출토
되었으며, Malta 특유의 Limestone
채취하던 유적지 또한 존재한다. 짙은 노랑
혹은 옅은 황토 빛을 띠는 건물이 Malta를 채우고
있는데 기사들이 쌓은 성이나 Maltese가 거주
하는 주택, 새로 지은 건물은 한결같이 Limestone
이라고 불리는 석회암으로 지어졌다. 칼로 반듯하게
잘라둔 두부의 단면처럼 매끄럽게 잘린 석회암이 벽돌 대신
건축 재료로 쓰였으며, 이곳이 원래... Limestone이 풍부
하기도 하였지만 어쩌면 당시 기사들의 곧은 신앙심을 상징화시켜주고 있는 듯싶다.
Malta Valetta-Grand Masters Palace
Malta...
Ggantija Temple
Malta Bus
The Silent City / Mdina
Malta 섬의 단면을 보면
중심부에서 동쪽의 해안가를
따라 비스듬하게 경사를 이룬다.
경사가 시작되는 위치에 Malta의
옛 수도 Mdina(임디나)가 있으며, 포구를
따라 벽을 쌓은 Valletta와 달리 육지에서 우뚝
속은 Mdina의 성은 주변의 편평한 지대와
비교되어 위압적이고 고풍스런 느낌을
전달하는데 깊이 파인 호(성벽 바깥에 도랑을
파고 물을 괴게 한 곳)
를 가로 지르는
육중한 돌다리를 건너면 성벽 안의 Mdina로 들어서게 된다.

성곽 안의 마을이 조성된
구조를 보면 "성 밖의 사람들"
불렸던 "French Guild"을 떠올리게 된다.
두텁고 고풍스런 담이 마을의 둘레를
감싸고 있는 이곳은 마을 전체가 현재 "세계
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다. 한편 좁고 꾸불꾸불한
골목은 Limestone의 노란색을 띠고 있고,
돌다리를 건너 아치문으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작은 광장의 켜켜이 쌓아올린 석회암 건물에서 세월의
공고함이 엿보인다. 높은 집들과 집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연결되는 Mdina는 옛 부터 "벽의 도시"로 불려졌었다고 전해진다. →The Walled City
Rotunda (Church of St. Mary) Mosta Malta
Mattia Preti
Polverista Gate
BC 1,000년 경
Phoenicia People
들이
Malta에 침공하면서 그들만의
은신처를 이곳에 지었고, 나중에
Roman People들이 재건축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16 C 기사단이 Valletta
요새를 쌓으며 Malta를 방위하였을 때는
Maltese 귀족들이 거주하던 곳이기도 하였다고 하며...

Mdina의 성문을 빠져 나가면
주변으로 서민들이 거주하던 새로운
세상 Rabat(라밧)을 접하게 되는데 Mdina를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뻗어 있는 길은
Mdina 보다 복잡하게 느껴지며, Mdina의
정문(Greek`s Gate)에서 정면으로 길을 곧장
따라가면... st. Paul`s Church(성 바울의 교회)
접하게 되는데 Malta의 역사에서 "기사단"이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듯이 대부분이 Roman-
Catholic 이기도 한 이곳에서 "성 바울"의 존재는
의미가 깊게 다가선다. "성 바울"이 Malta에
와서 사람들을 모으고 전도를 행했다는 사실을
기리는 성당 건축(1675)과 설교가 이루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Grotto of st. Paul →동굴 교회 지하에 위치 = 이곳 역시 Rabat의 명소이다.

st. Paul`s Catacomb
세계를 통 털어 Catacomb이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Roma 초기
기독교인들의 피난처였던 Catacomb이
있었으나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시가 아닌 마을에 Catacomb이 있는 곳은
Malta가 유일할 듯싶다. 게다가 Roma의
Catacomb은 현재는 자취를 거의 감춘 상태
이고 Rabat 일대가 이처럼 공동묘지인
것은 "성 바울"의 묘소가 이곳에 있었던 관계로
Maltese 사후에는 모두 이곳에 머물기를 바랬기 때문
일 것이라고 한다. 2차 세계 대전에는 Catacomb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대피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Hagar Qim
St Pauls Catacombs
Carob Tree
Cactus Jam(선인장),
Pear Jam(서양 배), Carob Syrup(캐러브)

.
.
.
앞서 설명되었던 것처럼
유럽은 Crusade 1차 원정 이외에
사실 성과없는 전쟁이었으며, 
완전히 실패한 전쟁이지만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먼저 유럽은 
Crusade 원정 당시 !! 불완전하게 "국가의
형태
가 확립되어 있던 상태로 제후 혹은
기사들이 일치된 행동을 기대할 수 없었던
환경이었다고 한다. 반면에 Islam 또한
외부의 침입을 저지할만한 조직과 유능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되었는데
12 C 들어서면 사정은 급변하고 이 시기부터는
Islam 세력이 집요하게 반격을 취하던 때이며, 그들의
중심에는 "Saladin(살라딘)"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침내 "Saladin"
의해 Jerusalem을 탈환되고 Islam은 세력을 확장
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유럽에서는 자연스럽게 위협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교황은 필요에 따라 2차 십자군을
조직 하지만 급조한 원정대는 결국 실패한다. 이어서
"England Richard 1세"에 의해 가장 막강한 병력을 갖춘
십자군이 조직되고 힘차게 Jerusalem을 향해 진격해 들어간다.

격전지에 도착한 Richard
1세는 드디어 Saladin과 일합을
뜨는데 두 사람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접전을 벌이게 되며,
상대를 제대로 만났었는지 점차로 전쟁이
장기화 되는 상황 속에서 Richard 1세에게 급보가
날아든다. 그것은 본국에 남아있던 자신의
동생과 전쟁 중 자신이 생각하기에 비열하게
후퇴한 France Philipp 2세가 동생과 결탁하여
왕위 찬탈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다급하게 Richard 1세는 Saladin에게 휴전을 제의하며,
"자유로운 성지순례"를 약속 받고 왕권 회복을 위한 회군을 시작한다.

잠시 !!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Richard 1세는
Henri 2세 & Queen Eleanor
사이에서 태어난 3번째 아들로
전형적인 Anjou 가문 사람으로
무책임하고 성질이 급하며, 매우 잔혹
할 때도 있었으나 가문의 대부분 사람들에
비해 완벽성을 갖춘 인물로서, 탁월한
군인이자 능숙한 정치가였으며 사람들의
충성심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찌되었던... Richard 1세는
스스로 끊임없이 불행속에 자신을
내던진 사람이었고 젊어서는
부친이기도 한 Henri 2세와 대립되어
전쟁도 불사하던 인물이었다. 또한 England
왕국의 장래에 대한 계획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이 Crusade 원정에 모든 정력을
쏟은 사람이기도 하였다. 한때는 오늘날 Bordeaux
Wine
의 심장부가 모두 Richard 1세의 영지
이었지만 죽기 전까지 Philipp 2세와 싸우는 일로
소비한 다소 황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죽음
또한 극적이었는데 어떤 농부가 "리모주 자작"
영지에서 묻혀 있던 황금을 발견했는데, 자작은 이것을
Richard에게 넘겨주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자
Richard는 자작의 성을 포위 공격하다가 갑자기 죽고
싶었는지 갑옷을 벗었는데 운이 나쁘게도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었고 이렇게 해서 상처가 심해져 사망(1199)하였다고 전해진다.
Fontevrault-l'Abbaye
Queen Eleanor
Abbey of Fontevrault
여기서 잠깐 !!
Richard가 Jerusalem에서 돌아
오면서 지중해 해상에서 커다란 폭풍을
만나 배가 난파당해 Venezia 인근에 표류 하였으며
Austria로 잠행하지만 발각되어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우여곡절 끝에 협상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귀환하게 되었는데 England가
지불한 몸값의 조달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Bordeaux Wine 팔아서 이익을 거둔 금액의 상당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 나름대로 그의
어머니 Eleanor도 일정 부분 기여했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던
Richard가 죽은 후에 Eleanor 뜻에 따라 Richard가 왕이
되었듯이 그의 막내 동생 John이 왕위에 오른다. 안타까운 것은
Philipp 2세에게 대분의 영토를 빼앗기는데 Eleanor가 Why !!
무모하였던 Richard에게 왕위를 넘기려 애썼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 주목된다.

이어서... 4차 Crusade 
때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표출
시킨다. 교황 권의 절정을 구가하던
Innocent 3세 에 의해 주도되었던 시기로...
세속적인 국왕들에게 거부당한다. 이에 따라
교황은 4차 Crusade 원정을
Baldwin을 위시한 North France 기사만 참전
하도록 하였고, 이들은 십자군 원정 중 가장 타락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당시 !! 각각의 이해관계가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원정은 Egypt를 공격하고 그곳의 Islam 세력을 축출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막상 소집된 병력은 예정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Part of the Original Sea Wall Around Constantinople
Red Road...Constantinople
Hagia Sophia Cathedral
"설상가상"으로 식량과
군비를 조달하기로 한 Venezia
상인들의 농간으로 수세에 몰렸는데
게다가 병력과 군비가 해결될 때 까지 대기
하다보니 "채무만 급증"하게 되는 상황으로 몰린다.
여기서 Venice 상인들이 기발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Hungary 인들이 차지한 Adriatic
Sea의 도시 "자라"를 찾아주면 계약 위반과 채무를 따지지
않겠다는 제안이었다. 즉 !! Christian를 위해 일어선
십자군이 Christian 도시 "자라"를 공격해 달라는 어이없는
제안이었으나 궁지에 몰려 있던 십자군은 이러한 제안에 동의를 하게 된다.

이때 교황에 의해 파문을
당하게 되지만 Crusade은 간단하게
"자라"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게 되었다. 자 !! 그러면 이제라도
원래 계획대로 당연하게 Egypt를 공격해야만
하는 Crusade이었으나 또 다시 매혹적인 제안
(Isaac 2세 & Alexius 4세)을 받게 되는데
그 제안은 Constantinople(콘스탄티노플) =
Istanbul을 공격하여 자신들을 황제의 지위에 올려주면 
Venezia  상인들의 채무를 갚아주고, 원정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며, 군사적으로 돕겠다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Venezia,상인의 농간) 결과적으로
Byzantine 황제, Constantinople 주교 중심의 Greece
정교회를 Roma 교황청에 통합시키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수용한 North France 기사들은 이들에게 황제의
관을 씌어 주는데 성공하게 되었지만 두 사람이 암살된 후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무력을 발동"해서라도 목적을 달성시킨다.

이렇게 해서 거의 1,000년
동안 지중해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던 Constantinople는 격전 끝에
함락(1204)시키며 여기서 Crusade은 Venezia
상인들과 약탈품을 나누고, 제 3차 원정에
참여 했던 Baldwin을 황제로 추대하며,
이렇게 해서 전설과 같이 Latin 제국을 건설되었다.

이러한 시기 Crusade이 차지하게
된 곳은 내륙 쪽이었고, Venezia 상인
들이 차지한 지역은 상업의 중심지 해안
지대이었다. 이들은 귀국하면서 많은 Greece
유물과 금, 은 보화를 가져왔는데 앞서
Hungary "자라" 공격으로 격노하였던 교황은
어쩐 일인지... 기뻐하며 파문까지 시킨 그들을
맞아들인다. 이상과 같은 4차 Crusade 원정의 탈선
행위는 본래 취지인 신앙심과 거리가 멀었고,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 이해관계가 우선했음을
입증하는 상황으로∼더욱 골 때리는 것은
North France에 양떼 몰이 소년 Estienne(에티엔)의 출현으로...

자연스럽게 조직된
"소년 십자군"이다. 웃기는 것은
이들이 원정을 떠난다는 사실도 어이
없었던 일인데 이들을 격전지로 수송하던
Marseille의 선주가 배신하여 "Egypt
Alexandria"에서 Saracen People 상인들에게
"노예"로 거래되었다는 점으로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대략 난감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Happening이 지난 후 Crusade 원정은 종교적이라는
이유에서 보다 정치, 경제 이해관계에 따라서 성지
Jerusalem 탈환보다는 다소 엉뚱한 지역들을 공격하게 된다.
Genova Boccadasse
Venice
5차 십자군 이슬람
근거지 Egypt 공격... 6차
십자군
- Deutschland Friedrich
지휘로 Islam과 협상을 통해 일시적으로
Jerusalem을 회복 하지만 이때부터는
"Temujin"의 세력에게 쫓긴 Turk People
들에게 다시 빼앗겼다. 마지막 7-8차 십자군
원정은 France Louis 9세에 의해 시도되었으나
오히려 자신이 포로가 되어 막대한 보상금만 지불하고
풀려나는 등의 성과 없는 원정이 되면서 결국 마지막
보루 "Acre(아크레)"가 함락되자 마침내
약 200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1291

"Crusade 원정"은 중세
유럽이 "종교적인 이유"로 작용한
통일체였다는 사실을 증명
하였고 그에 걸 맞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지만 "봉건 귀족, 국왕,
기사"
들의 대립과 상인들의 농간이 겹쳐...
세계사 속에서 실패한 전쟁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Crusade 원정 후 교황의 권위는 끝없이 추락
되었으며, 더 이상 "신이나 성직자"를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교회의 위신은
치명적 손상을 입었는데 오랜 전쟁으로 제후들의
재정적 위기는 국가적 문제로 등장하게 되었고 반면에
"도시의 시민계급과 국왕"들은 절대적으로 위상이
강화되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중에서도...

England & France에게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며 항구 도시 Venezia& Genova
대략 이 시기부터 번성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Crusade 원정"에서 이들은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된다. 따라서 도시국가들이 번성하게
되고 세력이 커졌는데 유럽의 세력 판도에 커다란
영향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도시 국가의
상인들은 The Arabian Peninsular(아라비아 반도)
사람들과 손잡고 "동방 무역"을 주도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상업 세력"은 막강해져만 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절대 왕권을 추구하던 국왕은 이들 세력과 손을 잡고 봉건
시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 세력"을 해체하는 작업을 착수
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봉건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던 기반이
흔들렸다는 것으로 종교적으로도 신앙심이 점차로 사라지면서 당시
사람들은 보다 현실적인 사고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세의 몰락, Renaissance St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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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 Cost Carrier
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항공 분야 규제 완화 정책의
결과로 출현하여 기내 서비스를
거의 없애고, 중소형 항공기를 이용
하여 단거리 운항을 함으로써 운영비용을
낮춰 저렴한 가격에 항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를 의미한다. 세계적으로
저가 항공사는 기존 대형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렴한 항공권 가격으로 승부
하고 있는데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거나 유료화
하고 요청하는 승객에게만 Water & Juice를 제공한다.

지존 항공사가 여행사를
통한 간접 판매에 대해 수수료를
지급하는데 비하여 저가 항공사는 Internet을
통한 항공권 판매로 비용을 절감하고
항공기 기종을 단일화시켜 운항 비용 및
정비 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 공항 이용료가 비싼 대형 공항을 이용하지
않고, 도심 근처의 보조 공항을 이용함으로써
경쟁력을 확보하여 탄력적인 가격정책을 통하여
구매 시점, 환불 및 취소 가능 여부, 요일 및
시간대에 따라 다양한 요금으로 티켓을 제공하고 있다.

Local Airport / Low Cost Carrier
Jeju Air /  http://www.jejuair.net/
Hansung /  
http://www.gohansung.com/
Yeongnam Air / http://www.ynair.co.kr/
Jin Air /http://www.jinair.com/
Air Busan / http://flyairbusan.com/AB/airbusan/main.jsp
Ryanair Boeing737-800 At Manchester International Airport
Easyjet...
01. Ryanair / Euro
http://www.ryanair.com, http://www.ryanair.co.kr/
02. Virginble / Australia
http://www.virginblue.com.au/
03. Easyjet / Euro(England), North Africa

http://www.easyjet.com/
04. Jetblue / America
http://www.jetblue.com/
05. Vueling / Spain
http://www.vueling.com/
06. Airasia  / Southeast Asian
http://www.airasia.com/
07. Southwest / America
http://www.southwest.com/
08. Skyeurope /  Euro
http://www.skyeurope.com/

저가 항공은 항공권
가격이 저렴한 대신 몇 가지
제약이 있는데 탄생 이념 자체가
항공기의 무게를 줄이고, 불필요한
서비스를 배제 한다는 저가 항공 만의
의식이 있기 때문으로 저렴한 가격과 서비스를
두고 선택은 이용객의 몫이 된다. "저가 항공
탑승권"
에는 좌석 번호가 없으며, 일반 버스처럼
먼저 타는 사람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물과 간단한
음료는 제공되지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유료이기에 구입하여
먹을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저가
항공사는 무거운 짐 혹은 수화물을
보내려 할 때 수화물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Easyjet의
경우 한사람 당 20 kg이하의 가방
한 개 까지만 짐을 무료로 보낼 수 있으며,
가방이 여러 개라면 개당(7.5 Euro)
추가로 지불해야하는데 이러한 경우도
현장에서 지불한다는 것이고 Internet에서
지불하려면 15 Euro로 가격이 배로
뛰므로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이다. 심지어
Ryanair의 경우 2008.10월부터 점진적으로
캠페인을 벌여 항공기를 이용한 수화물 없이
승객들이 들고 타는 휴대품만 가능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주의 할 것은
취소, 변경, = 추가 비용 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예약 시 입력한
모든 정보가 변경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실수가 First Name(이름),
Last Name(성)
을 바꿔 쓰는 경우인데 여권과
이름이 동일하지 않을 경우 티켓 가격과 맞먹는
30 Euro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Ryanair, Easyjet)

예약, 취소 변경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수수료가 항공료보다
비싼 경우가 많아 대부분은 환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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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nice Mask Carnival
Turning Point
Venice Mask Carnival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수중도시 Venezia에는 특별한
행사(세계10대 축제)가 열린다. 
Venezia 하면은 떠오는 것이 수많은
운하(170)와 다리(400)이고. 많은 섬(115)
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인데 섬들이
하나로 이어져 도시로 이루는 형태를 보이며,
이곳에서 매년 대략2월 중순-3월 초에
Venice Mask Carnival이 열리고 있다. 이러한
행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1 C 중세 시대(1039)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도 매우 중요한 행사로 치러졌다고 한다.

Carnival18 C Venice
People 들의 "삶의 일부"가 되기도
하였고, 기본적으로 매년 10월 첫 번째
일요일부터 Christmas 까지∼ 그리고
공헌 절부터(01. 06) 사순절(부활절 전 46일간∼)
까지∼ 6개월 동안 지속되었는데 축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은 가장 완벽한 익명으로 모든 것을 가능
하게 해주는 이러한 행사를 치루며 대다수가 가면을 벗지
않고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 이유는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 이곳에서는 Carnival이 금기와 사회적 장벽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는 "자유주의 적인 사상"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축제는 곳곳에서 벌어졌으며
거리에서∼궁전에서∼ 하층민들의
집에서 까지∼귀족들의 저택에서도
벌어졌다. 무도회, 공연, 세련되고 상상력이
풍부한 오락거리가 전 유럽의 한량들을
끌어 모았고 모든 방탕함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Venezia  Mask
Venezia Mask
유래를 살펴보면 당시 !!
Venezia에서는 "육식 일"에 황소
한 마리와 돼지 12 마리를 총독과
고문들이 참석한 가운데 "San Marco
(산마르코 광장)"
에서 희생시켰었는데,
이것은 Venezia의 Aquileia(아퀼레이아) 점령을
가념하기 위한 것으로 Aquileia는 당시
막강한 이웃 도시이기도 하였으나 Venezia
공화국에게 정복당한 뒤 사라졌고, 동물들은 교황
Adrian 4세의 요구로 Venezia People 들이
사면해준 Aquileia의 총독 주교와 12명의 참사 원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Carnival도 Renaissance
시대에는 민중의 참여를 자제시키고 귀족들 만의 축제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엄격한 Catholic 국가이던 Austria &
France 식민시절을 거치며 결국 Venice 공화국이
붕괴었고, 함께 18 C 금지되었으나 거의 200년 지난 후
1979년 Carnival이라는 주제로 연극 축제를
만들어낸 "Art Biennale"의 주최자들에 의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도시의 극장들은
일주일 내내 밤과 낮으로 열려 있었고,
Carnival 행사장은 관광객이 어마어마하게
모여드는 곳이 되어 때로는 2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San Marco-Marc 광장과 주변의 길로 몰려
들게 되었는데 광장에는 기괴한 복장과 가면을
쓴 사람들로 넘치며,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괴이한 행동을 서슴없이 즐길 수
있었던 축제의 묘비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다소
지역 주민의 호응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Venice는
이러한 행사가 아니더라도 가면을 쓰고 다닐 수
있었다고 하는데 "가면의 상용"은 아주 흔한 일이어서
1436년에는 장인들에 의해 특별한 조합이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당시 장인들의 평판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도락가"들로 하여금
익명 속에서 방탕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에 달이나 해 광대와 광대의 애인,
후작과 후작 부인, 악마, 신부와 수녀 등의
가면은 사람들이 꿈꾸던 꿈을 실현시켜 주었다.

참고로...주목되는 것은...
Napoleon Bonaparte의 경우
Venezia를 병적으로 아주 싫어했다고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지  결국 그에
의해 차츰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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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ta...St Elmo

Limestone
01. L'orphelin - Claude Jerome
02. Ballade Pour Ma Memoire - Francis Lai & Liliane Davis
03. Il Est Trop Tard - Georges Moustaki
04. La Novia - Gigliola Cinguetti
05. Zwei Kleine Sterne - Heintje
06. Porque Te Vas - Jeanette
07. Sous Le Ciel De Paris -Line Renaud
08. Besame Mucho - Mayte Mattee
09. Che Sara - Ricchi e Poveri & Hose Feliciano
10. Lestate Sta Finendo - Righeira
11. Pokarekare Ana - Sissel
12. Canoe Rose - Victor Lazlo

by Beercook | 2008/10/19 04:54 | And...Sotenut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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