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6일
Grassland Horse / Mustang Horse


Mustang Horse / Equus Caballus
"현 생 말"은 학자들 간에 의견이 다르지만
대략 500 만 년 전에 North-America에 출현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이 중 일부는 Bering Strait Bridge를
거쳐... Asia에서 최초로 가축화 되었고, Africa, Europe으로 퍼져
갔으며 대략 12,000년 전 발생지인 North America 지역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학설에 의하면 North America 대륙에 출현한
"홍적세인" 들이 말들을 사냥하여 멸종시켰다는 사실이다. 또한...
전염성이 강한 질병, 기후 변화 등의 복합적 요인에 의해 말들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쯤에서 일견 Mammoth의 멸종도
같은 선상에서 놓고 추론해 볼 수 있으며, 당시 !! 단순 무식한 인류의
수렵에 의한 원인이 가장 커다란 이유인 듯 싶다. 훗날... 16 C Spain(Castilla)
People 들이 가져온 말... 들이 대륙에 남아 있던 "토종 말" 들과 "이종교배"
됐다고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하며
이렇게 해서 일부 "야생마" 무리는 정복자들이 가져온 말들의 직계 후손이 되는 셈이다.
특히... "Montana, Wyoming" 북부에 서식
하는 말들이 그러한데 혈액에 의한 "혈통 검사"를
해본 결과 Spain 혈통이 수 백 년 간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에게서 좀 더...원시에 가까운
야생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얼룩 말처럼 다리에 줄무늬가
있고, 등뼈를 따라 줄이 그어져 있으며, 암갈색과 회색의
위장 색을 띤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종"이 수세기를 거쳐
살아남게 되었고, 대공황(1930) 때에도 살아 남은 "잡종"으로 목장 주
들이 의도적으로 풀어 놓은 Thorough Bred(서러브레드 종),
Arabian Horse의 혈통이 섞이면서 야생마들의 유전적 형질은 보다
우수해진다. 그러면서 세대를 거치면서 취약점은 희미해지고, 생존 본능은 강해졌다.




"말"이 가축으로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가능하였으며,
처음에는 "단백질 보충"을 위해 "식용"으로만 쓰였다고
한다. 말이 가축화 된 흔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Iran 고원에 자리한 유적에서 발굴된 것(기원전 4,000)으로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번식된 말의 품종은 대략 40 종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며, 여기서 다시 크게 분류하면 "북방 종과
남방 종"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체로 북방 종은 털이 길고
육중하며, 남방 종은 털이 짧고, 날씬한 편이다. 북방 종은 Mongol-
Type의 말의 조상으로서 China, Korea 등의 말이 여기에 포함
되며, 남방 종은 Arab Type의 말이 대표적인데 "한혈마(汗血馬)"를
비롯한 Central Asia의 말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말"들은
사회, 경제 발전의 수요에 따라 품종이 계량되었고 사육이 증가
하면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갔으며, 그 여파로 동방의 끝자락
"한 반 도"에는 한(漢) 무제 시대의 말들이 자연스럽게 유입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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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 C "등자의 발명"과 함께 인류가
말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는 서구
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마유목민"의 출현은
기원전 800 년경으로 추정된다. 그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Mongolia의 유목민들은 외롭고 고난에 찬
생애를 말과 함께 살아왔다. 평화 시...혹은 전쟁 시...에
짐을 나르는 운송 수단으로서 "모피 유제품"을 제공하는
교역의 대상물로서 "말"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목민(遊牧民)의
가장 확실한 재산이 되기도 하였다. "부"를 상징하였던 것은 사육하는
말을 통해 표시되며, 유목민(遊牧民)들은 자신의 말은 물론
이웃의 말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Mongolia의 말은 몸집은 작아도
꼬리털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그 이유는 초원에서 갈기나 꼬리털이
닿지 않는데도 원인이 있지만 꼬리털이 짧으면 등의 파리나
진딧물 같은 것을 쫓는데 불편할까 봐... 절대 자르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말의 혈통이나
재능까지도 중시했음을 드러내는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말이 보다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 것은 경제적인 측면 보다 역사적,
문화적, 정서적 측면에서이었다. 말이 Mongol-
People(遊牧民) 들에게 동물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간과 동등한 자격을 공유하는 친구와 같은 동반자라는
의미를 포함하며, 훌륭한 충언자이고, 인간의 언어를
알아 들으며 이해하는 수준에 있는 몇 안 되는 동물 중에
한 종류이다. 따라서 Mongolia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말은
생활의 일부이라기보다 몸의 일부라고 해야 옳다. 그만큼 삶과
죽음의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한 것이다. 유목민 한사람에게
"말"이 있다면 그는 비록 Central Asia의 높은 "산악지대"에 버려진다고
해도 살아남을 기회가 있다. 말은 장소를 식별하고 위기를 감지
하며 환경의 변화를 사람에게 알리고 스스로 생존의 본능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더불어 유목민(遊牧民)의 패권적인 군사력의 원천이
"말" 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초원지대에서 방목하는 말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고, "고갈"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Mongolia의 말은 몸집이 작아서 빨리 뛰더라도
피로를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오른쪽 앞과 뒷다리와
왼쪽 앞과 뒷다리를 번갈아 내리면서 달리는 조리모리
(조랑말)는 "기마 군사"들로 하여금 달리는 말에서
자유자재로 활을 쏠 수 있게 하는 최상의 말이었으며
Europe에서 마구간에 넣어 기르는 말과 달리 거친 기후에서도
생존할 수 있었고, 초원 생태계 속에서 혼자서도 생존해 왔다.
또한 "품종 개량"이 되어 덩치만 커진 Europe의 말 보다
야성적이며 높은 곳을 더 잘 기어오르고, 높이 뛰어 올랐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강한 기질에 전쟁 수행 능력 까지 갖춰져 있다고
판단해보면... 유목민(遊牧民)들의 "말"은 스스로 왜 !! 싸우는지
최소한 알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 말들은 그냥...전쟁터에 동원된
"말"이 아니라 "참전한 말"이었던 셈인 것이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특이한 주행으로 쉽게 지친다는 점인데...그래서 Mongol People 들은
여러 마리의 말(5-7마리 정도)들은 "전쟁터 혹은 방목지"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초원"에서는 가축과 인간의 생계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 한 것이 "방목에 필요한 초지"이다. 한 마리 말을 The Steppe
지역에서 1년 간 정상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대략 20 ha의
목초지가 필요하며, 양의 경우는 12-24 ha가 필요하게 된다고 한다.
1 ha가 10,000 ㎡ 라는 것을 감안하면 유목민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초지가 엄청났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연 평균 강우량이 140-
320 mm에 불과하고 가혹한 기후 조건을 지닌 Mongolia에서 유목 말고는
그 어떤 경제 활동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당면한 문제는 가혹한 겨울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겨울 방목지"의 확보이다. 눈이 쌓이지 않고 "풀"이 풍부
하며 바람도 막을 수 있는 곳... 그러나 이러한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목민 간에 분쟁원인을 분석해 보면 거의 대부분은 겨울 방목지 확보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족속은 15-20 km만
이동해도 가축을 키울 수 있는 풍요로운
목초지를 확보할 수 있었으며, 반면 패배한 족속은
400 km에 이르는 험난한 대장정을 벌여도 생존을
위협 받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유목민들에게
겨울 방목지 확보라는 의미는 생존 그 자체를 결정하는
것이기에 도저히 양보할 수 없었던 최후의 보루이었던 것이다.
또한 가족 단위 집단위주로 1년 주기로
"이합집산"이 되풀이 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가축을 데리고 초원을 이동하는 사람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순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삶 속에는
"농경민"과는 다른 조직적이고 역동적인 냄새가 강하게
배어 있는 것이다. 엄격한 자연 황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유목민들은 대상 불문하고, 모두 용감하여야 하였다. 즉 !!
사회 전체가 풍부한 자립심을 가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말 또한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야만
하였고, 그렇게 해서 인간과 동물(말)은 신뢰를 쌓아가는 존재로서 남겨지게 된 것 같다.
초원의 유목민(遊牧民)이
위기를 돌파... 하는 방법으로는
초원 밖의 사람들과 "공생공존"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고...서로 남은 물자를
이용 "교역의 길"을 열어 가는 것이었다.
마지막 으로는 단순 무식하게 "약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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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ing Point
Battle of Talas
747 ...토번(吐蕃, Tibet)과 Islam 세력이
"당 왕조"를 견제하려고 하자, "당 현종"에 의해
고선지(高仙芝) 장군이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에
발탁된다. 고선지(高仙芝) 군사 1만으로 Pamir
고원을 넘어 대략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Islam의
동진을 저지한다. 제2차 원정에서는 Islam과 동맹을
맺으려는 Uzbekistan-Toshkent의 국왕마저... 사로잡아
장안(長安)으로 호송하게 되는 대승을 거주게 되지만
"장안(시안)"의 문신들이 포로가 된 국왕을 참살하려는 것을
당 현종이 허가하면서 죽어 나가자 이듬해 서역 각국과 Islam
연합군이 Talas(751)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위기의식을
느낀 당 왕조는 7만의 정벌군(제3차 원정)을 편성, 이번에도
고선지(高仙芝) 장군에게 그 임무를 부여 한다. 장군은 이곳에서
기습적인 공격을 감행하며 기선을 잡고자 하였으나 대패(754)
하며 수많은 병사가 죽고, 포로로 잡힌 이후에야 후퇴할 수 있었다.
귀국 후 장안에 기거하던 중 이때 "당 왕조"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안 록 산의 반란"(755)이 발생 되어 졌다. 그런데
불가사의 하지만 이번 전투에서도 장군은 승기를 잡지 못하게 된다.
그러던 중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작전상 후퇴를 거듭
하였고, 이에 평소 사원(私怨)을 품고 있던 부관이 방어 담당지역을
무단 이동한 것으로 과장하여 밀고(密告)함으로써, 진중에서 참형되기에 이르렀다.
기억할 것은 역사 속에서 거의
지워지다시피 한 장군의 마지막 모습이
의연하였던 것이다. 자신의 과오가 없음을
역사에 남기고, 외교적이지 못한 "당 현종"의
어리석음 꾸짖듯이 묻는다. 목이 베이기 직전...
장군은 휘하 병사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믿는다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소리치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많은 병사들이 "잘못이 없다"고 세 번 외친다. 그 소리를
들으며 고선지(高仙芝) 장군은 목이 잘려 죽게 된다.
"당 현종 치세" 그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과가 Talas
전쟁이었다. 죽일 필요도 없었던 패전국의 국왕을 죽이며,
결과적으로 국력을 낭비하였고, "당 왕조"의 막강한 힘을
점차로 상실하게 되었다. 위대한 "양귀비"의 치마폭에 감싸여
눈뜬 장님이 되고 만 것이다. 참고적으로 Samarkand로 끌려간
포로들 중 다수는 "장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서방에
"제 지 술"을 퍼뜨린 주역이 되었음은 Abbassids Dynasty의 동방
총독의 증언으로 역사에 남겨지게 되었다. 또한 당시 포로들이 비단 짜기,
금은 세공 기법 등이 Arab Word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으며 Battle of Talas 전쟁 이후 11 C "Karakhan Dynasty"의
Islam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이후 Timur 시대(1405-1500),
시대에 개화 되었는데 이 시기를 사가들은 Islam Renaissance시대라고 부른다.
고도호총마행 / 高都護驄馬行 → 두보(杜甫)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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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거세지고..
양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그냥 Camp로 돌아오게...무슨
일이 있어도 양들을 뒤 쫓아서는 안 되네...

들려준 말이다. 그만큼 North America Wyoming
주의 기후는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변화가 심했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용주로서 고용인에게 주의
사항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안전사고
(인사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같은 Peru 출신의 Veteran 목동 또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결정적인 조언을 전달하며 숙지시킨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고용
주의 염려 혹은 선배 목동의 충고가 무의미해 진 것으로 나타난다. 드디어
고용주가 제공한 Mustang(야생마)을
올라타고 신입 목동은 양떼를 이끌고 끝없이
펼쳐진 "야생의 세계"로 떠났다. 목장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바람이 매서운 칼바람으로 변했고, 기온은
영하의 날씨로 뚝 떨어지게 된다. 그러나 젊은 목동은 뭔가
보여주려는 듯 양떼를 지키려 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다
양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밤이 되자... 바람은 더욱 거세지며,
결국 말 위에서 젊은 목동은 길을 잃게 된다. 추운 기온 탓에
몸은 점차로 얼어 갔고, 삶의 의욕마저 저하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때 선배 목동의 충고가 떠올려 진 듯이 목동은 말의 고삐를
벗기고 몸을 숙여 두 팔로 말의 목을 감싸 안고 눈을 감은 채로 운명을
"하늘과 말"에 맡기게 되었다. Wyoming 에서는 한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날씨가 험악해지면 100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목동의 생사는 야생에서 자라고 이러한 지역을 훤히 알고 있는
"말" 들에게 의해 생사를 의탁하였다. 150만 년 전에 대평원을
자유롭게 질주하던 선조 말들의 DNA가 현대에 이르기 까지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Hand-Phone의
Bell 소리가 터지면 현대로 다시 들어서고
"문명의 이기"에 밀려 자연의 위대함이 사라져
가는 이곳에서 Mustang는 더 이상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즉 !! 야생마는 자신들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며
땅의 냄새를 맡으며, Prarie Dog, Ossory Tunnel을 피해
"총기와 용기"를 발휘해 겁에 질린 목동을 Camp로
데리고 왔던 사실도 그저 현실 속의 한 장면 뿐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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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tang
North America
대평원에 사는 야생의 작은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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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al Asia에 여행하게 되면 쉽게
만나게 되는 것이 "말"을 형상화한 구조물
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국가의 상징물이
되기도 하며, 고정된 건물의 장식물로서 심지어
"이정표"를 대신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 형상도 날개
달린 "천마", 대지를 주름 잡는 "준마", 앞발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용마"에 이르기 까지 실로 다양하고, 말을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영매체로서 성인의 탄생 알리는
예시의 동물로 수호신으로 까지 여기며 숭상한다. 또한
초원이라는 태생적 자연환경 속에서 한혈마(汗血馬) 같은...
전설적 명마가 생겨나 역사의 무대에서 Central Asia를 부각
시키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땀과 피를 흘리는 말"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기생충이 말의 뒷목과 어깨
사이의 피하조직에 서식하여 이것에 기인하여 달리게 되면
혈관이 팽창하여 땀과 피를 함께 흘리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사기"에는 한혈마가 "천마"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으며,
고대 대원(大宛, Ferghana)에는 높은 산
(해발 2,000 m)이 있어 그 위에 천마가 내려와
노니는데 이를 잡을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산
아래 오색 말을 풀어서 암내를 내게 하여 "천마"와
교배를 유도하여 새끼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천마자(天馬子)라고 하는 한혈마의 조상이 되는 말이다.
한편으로 천운을 타고난 이 말은 강인하고, 주력이 뛰어나
하루에 천리씩 달린다고 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천리마"가 비약의 상징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기원전 2 C 서역에
사신으로 파견 되었던 "장건(張騫)"으로부터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한(漢) 무제는 황금으로 등신대의 "금마"를 만들어 말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대원 측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두 차례의
원정을 단행하였으며, 첫 번째 원정에서는 대패하지만 두 번째 출정에서는
승리하여 원하던 말 몇 필을 얻어 번식에 성공하였다. 당시
한(漢) 무제는 "흉노 침공"을 위해 군마를 확보하던 상황이기도 하였다.
"전한(前漢)"도 오손(烏孫, Kyrgyzstan)의
중서부 지역으로 부터도 또 다른 명마 서극마
(西極馬)를 들여왔으며, 후한(後漢) 시대에 멀리
월지(月氏, Afghanistan East)로부터 월지마(月氏馬)를
수입하였다. 그리하여 한(漢) 무제시기 중앙 정부가
관장하는 군마 만도 40 만 필이 되었으며, 이처럼 말의 보급이
확산되었다고 한다. 말의 보급 지는"대원, 오손"을 둘러싸고 있는
천산(天山) 산맥의 South-North 기슭에 펼쳐진 초원지대였다.
Talas 동쪽으로 290 km 떨어진 수도 Bishkek(비슈케크)로
향하는 산간요지가 바로 그곳이다. 해발 2000 m의 신비로운 자연의
변덕스런 기후 속에서 계곡에 모여 살아가는 유목민들에게 말은
항상 생활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말은"기마 유목민족"이 숭상하는 영물
일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주는 기둥이자 밑천인 것이기도
하였으며, 농경민들은 주로 경작 운반에 이용하였고, 중요한 축력과 교통
수단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전투에서는 기병 전력의 중추이자 핵으로서
말은 상당히 "영특한 동물로서 인간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동물 중 하나이며,
그래서 명마 론이라는 미담도 전해진다. 관우가 타던 "삼국지의 적토마"도
그렇고, 광해군(조선) 치세 부원수로서 만주 정벌에 나선 충무공 김응하(金應河)의
명마 또한 그러 하다. 장군이 전사 직전 옷에 유서를 써서 애마로 하여금
고향에 전하도록 하였는데 애마는 머나먼 "요동으로 부터 강원도 고향"까지 찾아와
임무를 완수하고 북녘에 묻히어 있는 장군을 그리며 굶어 죽었다고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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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ing Point
간선도로를 따라 드문드문 작은
마을들이 들어서 있고, 마을과 마을
사이에 공유지가 끝없이 펼쳐진 전형적인
North America 서부에서 야생마 학살
사건이 있었다. 올가미로 야생마(종마)를
포획하여 거세시킨 사건이었는데 "종마"는
과다출혈로 하직하였고, 사체는 외진 골짜기에
버려진 상태로 주동자 및 공모자 전원이
체포되었다고 하며, 이들은 "연 방 법"을 어겼는데도
단순 경범죄(6개월)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고작
1,000 Dollars가 조금 넘은 벌금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인류(백인)가 서부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로
야생마는 지속적으로 멸시를 받아 왔으며
초원에서 발생 할 수 있는 그리고 발생한 모든
좋지 않은 일의 원흉이 되어 왔다. 목축업자들이
최대 4,000만 마리의 소를 초원에 풀어 놓았던
1800년대 중반에서 부터 수세기 동안 목초지를 파괴
하지 않고 살아온 Mustang 들이 목초지를 급감
시켰다는 누명마저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렇지만 초기
"정착민"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자원이 되어 주었다.
물론 !! 얼마 지나지 않아 철도와
도로가 놓이고 자동차와 트랙터, 탱크,
콤바인이 도입되면서 Mustang은 운송 수단
으로서의 가치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1930년대
에는 "야생 말고기"가 대량 유통되기도 하지만
"개, 고양이, 닭"의 사료로 가공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Helicopter를 이용한
말 몰이가 매년 40-60 회를 실시되며 야생마
5,000-10,000 마리가 서부 "방목 장"에서 제거된다.
이후 다른 장소로 이동 낙인이 찍히고, 거세당하거나
치료를 받고 성과 연령에 따라 분류된다. 그 중 일부는
훈련시켜 경매 시장에서 매매 되기도 하고 일부는
분양되거나 장기 보호 시설로 이송되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야생마의 분리는 종마는 종마 대로, 암말은 암 말대로,
망아지 따로 수용하는 방식이 기본이다. 야생마들은 감성이
풍부하고 사회적인 동물로서 강한 집단적 지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도로 조직화 된 가족 집단 속에서
살며, 종마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때로는 치열한 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 이 후에는 도전해 오는 다른 종마로부터
암컷을 지켜 내야한다. 그것이 아마도 자연의 법칙이 아닌가 싶다.
또한 이러한 방어적 행위는 노쇠하여 더 이상 투쟁할 수 없을
때까지 지속되어 진다고 한다. 야생마 공동체 내에서는 갑작스럽고
끔찍한 전쟁으로 돌발적 사고가 무수히 발생되어지며, "암말"을
얻기 위해 죽음을 도외시 한 투쟁도 여기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만약 종마 + 암말이 오래도록 함께해오다 암말이 죽거나 사라지면
종마는 그것으로 홀로 쓸쓸히 늙어가고 우울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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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부 지역에서는 야생마 수가
생태계의 수용 능력을 초과해 가축과
야생 동물뿐만 아니라 야생마 자체에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부실한 토지
관리와 잘못된 정책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사냥 가능한 야생 동물이나 가축과
달리 야생마에게는 경제적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야생마가 소모하는 자원(풀)을 둘러싼 논쟁은
감정적 차원의 접근 방식과 과학적인 합리주의에
해당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만약 야생마가
North America 토착 종으로서 분류되면 땅을 사용할
자격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권리가 없다는 양비 론도 존재
한다는 점이다. "정착민"은 오래전부터 개최 수를 조절
하기 위하여 이따금씩 야생마를 사냥하였고, 목장일과 운송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주기적으로 포획하였으며, 이러한
관점에서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야생마의 자연 포식자이었던 셈이다.
더구나 가축보호 대 광물 개발, 습지 보호라는
이해가 상충 하고 있는 지역이 토지 관리국에 의해
관리 되고 있는 땅은 국유지(100만 ㎢)로서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부 상황에 맞추어
관리해야 함은 마땅한데... 그리고 이론상으로는 이만한 면적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곳은 모두를
위해 공평하게 관리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로지 당대에 "우선권"을
가진 자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 지역의
우선권은 가축(야생마)이 가지고 있었다. 그저...소, 양들과 같은 가축은
토지 관리국 "관리지역"에서 야생마와 야생 당나귀에 비하여 20배
많은 목초지를 먹어 치웠다는 기록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현실적으로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USA의 Energy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여론과 실력자들의 압력"으로 결과적으로 서부 지역 여러 곳에서
목장 주들의 지배적 위치를 상실한 것이다. 말하자면 대세를 따르라는 말일 것이다.
야생마는 토지 관리국 관할 하에 있는
총면적 11만 7,000 ㎢의 가축관리 구역에
분산 수용되어 있다. 따라서 토지 관리국은 법률에
정하는 바에 따라 적정 수치 범위 내에서 가축 수를 유지
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야생마 권리 옹호자들은
이러한 수치가 지나치게 낮아서 가축의 유전적 다양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목축업자들은 수치가 너무 높아서
오히려 주요 목초지를 황폐화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Cowboy 들이 주기적으로 야생마를 잡았을 때에는 야생마
때문에 "방목장"을 망치는 일이 없었고, 개체 수 조절도 가능하였다.
그러나 야생마가 법적 보호 대상이 되면서 Cowboy들로서는
개체 수 조절을 기할 수 있는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야생마 수가
증가하게 되었다는 현실적 논리가 팽배해 있다. → 야생마 보호주의 자 + 목축업자의 이견차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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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위에서 안장을 얹고 올라타는 인간이 있는 한 "말"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Mustang 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유전적 다양성을 위협 받지 않고 무리지어 자유롭게
달릴 수 있는 토지가 언제까지 충분 할지는 미지수라고 한다. 현재
이러한 USA의 야생마 절반은 Nevada 주에서 서식하고 있는데 말은 Spain
(Castilla) 탐험가와 함께 들어와 기병대를 위해 싸웠고, United States of
America에 헌신적 이었다. 즉 !! 오늘날의 United States of America의
역사와 함께 하였고, 오늘날의 강성 대국의 역사적 배경에 명백하게 야생마도
자리 하고 있다. 또한 말은 인류사에서 가장 "신뢰가 가는 동물" 이다. 들판
에서 노동하는 인류에게 도움을 주었고, 야생이든지 길들여졌든지 말은 존중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USA → Mexico를 침략할 당시 대평원에 시선이 닿은 곳 까지
Mustang의 개체수가 몇 마리가 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 하게 퍼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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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rth America의
광활한 초원(서부 10개주)에서
방목되는 야생마가 서식하는 지역에서
"국유지"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
관계를 조율하는 연방기관 → 토지 관리국
떠돌이 야생마 및 당나귀 보호법 1971년 제정(연방법)
"화석 연료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국유지를 차지
하려는 업자들과의 경쟁...
방목 장을 사이에 두고 야생마와
벌이는 전쟁...가뭄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료 값 → 법으로 금지된 밀도살 현장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는 야생말 !!
화석 연료, 천연가스 개발로
마구 파헤쳐진 땅(국유지)야생마,
목축업자, 야생동물 모두에게
힘든 상황 그렇지만 야생마가 서부의
상징물로서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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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agedy of Commons(공유지의 비극)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용어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환경을 파괴하게 만드는 Mechanism을
비유하고자 사용하였다. 여기서 Commons(공유지)는 아무나
와서 이용할 수 있는 초지(草地)를 말한다. 개인 자격의 농부,
목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더 많은 수의 양, 소들을
공유지로 끌고 와서 풀을 뜯게 하지만 아무도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결국에는 그 어떤 풀도 자라지 못하는 비극적인 상태가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진화생물학의 연구 결과들을 보면 대부분의
생물은 Collapsing Tragedy(붕괴적 비극)이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의 이익을
억제하는 Mechanism을 가지고 있어 공유지의 비극은 Component-
Tragedy(부분적 비극)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Garrett Hardin(가레트 하딘)


잔혹 행위는 법으로
금지시킬 수 있어도 그런...
행위를 낳은 문화는 금지 시킬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에
맡기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자연이
동물의 생사 결정권을 행사할 때
동물 군이 전체적으로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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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ine / Eva Cassidy
# by | 2009/03/06 12:22 | Storytelling Is...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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