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lphabet Story

Vesuvius from Plane
Cartouche Regnaudin Amelot de Bisseuil
Thebes Map
고대 유물은 간헐적으로 유럽인들의 관심(1485년 이 후)을
끌었지만 본격적인 유물 발굴 작업은 먼 훗날에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기원 후 79년 Vesuvio(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매장된
Pompeii의 발굴작업이 시작되면서 이미 !! 발굴의 역사는 시작되었던 것이다.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된 것은 역시 Pompeii 유적의 발굴에 있었다.
Pompeii 거대한 도시가 땅속에 묻혀 있다면 또 다른 고대문명 역시... 땅 속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러한 생각들은 사료와 유물의 흔적을 통해
실제 적용되었으며, 대략 이러한 시기부터 고대 문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박굴 작업을 급물살을 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발굴 계획도 해당
유물이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모르면...허당 중요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발굴의 최종적인 성과는 해당 문명이 사용하던 문자의 해독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하였으며, 당시 부국이라고 할 수 있는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고대 문명의 탐사와 함께 고대 언어의 해독작업에 나서 상당한 성과를 이룩한 것이다.

Napoleon Bonaparte의 "이집트 원정(1798)"은 애초에 순전히...
Napoleon 자신의 자의식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당시 France는
혁명 정부가 들어서며 혁명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구-체제
동맹 세력이기도 한 Austria 공략을 수차례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찌되었거나 "빈"으로 공격해 들어간 Napoleon Bonaparte에 의해서 Austria는
굴복되었고, 한 순간 Napoleon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에 혁명
정부는 Napoleon도 견제하면서 United Kingdom의 "인도 영토"에 대한 지배력
약화를 노린 다원적인 계획이기도 한 Egypt 원정을 추진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원정 길에 많은 학자들을 포함시켜 떠난 행운을 달고 다녔던 사나이 Napoleon은
원정도 성공적인 결실을 맺었고, 뜻하지 않게 돌덩어리 하나를 획득하는데
그것은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었으며 고대 "이집트 문명"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어준다.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The Bather 1808
Sketch by Jacques-Louis David of the Tennis Court Oath.
David later Became a Deputy In the National Convention In 1792
이로 인하여 19 C 초기에 유럽에서는 Nile River 유역의
경이로운 고대 세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
하였으며 상류사회에서는 여행은 물론이고, 이집트 유물의 수집이
활성화 되었다. 더불어 점차로 문자 해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많은 학자들이 참여하기에 이른다. 한마디로 정치적 결정이 인류 최고의
비밀에 다가서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셈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Champollion에 의해 문자 해독이 이뤄졌고, 그는 1931년 사망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자 해독에 전념하였다는 점이다. 또한 지나칠 정도의 Egypt
옹호주의자로서 그는 보수적 Christianity & Hellenism의 학파와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한 배경으로서 초기의 폭발적 관심 이 후... 상형문자 해독은
경시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지만...1850년대 그의 해독결과가 되살아나면서
다수의 학자들은 Egypt에 대한 매력과 Champollion의 빛나는 연구 실적
그리고 당대의 강렬한 인종주의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게 되었는데...
일부에서는 1880년대 까지 Egypt 문화를 정적이며 창조력이 빈곤한 문화의
막다른 길로 보았고, 19 C 동안 수많은 수학자와 천문학자들은 Pyramid수학적
우아함에 이끌려 보다 수준 높은 고대 지혜의 보고라고
믿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설명하는 다른 것으로 "흑인 노예와 인종주의" 발흥으로
유럽 사상가들은 Africa 흑인을 가능한 유럽 문명에서 배제하려 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중세, 르네상스"시대에는 Egypt People 들의 피부색을 몰라서
그저 "백인"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Egypt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있던 Freemason은 Egypt People이 백인이라고
여겼으며, 그 뒤 전통적인 Greece 문화 추종자들에 의해 Egypt People의
피부색이 백인이라는 사실에 부정적인 의견을 반영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들이 문명 인이었다는 사실마저 은폐하기에 이른다. 반면에 18-19 C 초기
"낭만주의 학자"들은 다소 경멸적인 시선으로 평가절하 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유럽인이 Africa People  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
Egypt People을 바라보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또한 당시... 유럽 사상의
중심으로 이루던 "낭만주의 학파"의 Egypt에 대한 고정된 시선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지 흑인과 유럽 문명 사이에서 뚜렷한 경계선이 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Mycenae-Knossos" 문명이 차례로
발견되고,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면서 나타난 현상들도 결코 가볍지만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셈-족 문명(Phoenicia)을 부정하고, Creta
상당 부분 고대 셈-족의 영향을 받았다는 고대 전승마저 무시한다.
즉 !! Greece에 대한 Phoenicia의 영향은 1920년대에 이르면 "신기루"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완전히 배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시기는 Russia...
혁명과 제 3세계에서 Jews People 들이 수행했거나 수행했음직한 역할로
인해 반-유대주의가 점차로 거세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기원전 9 -8 C Aegean Sea
& Italy Peninsula
에 "페니키아인들이..."존재 하고 있었다는 기록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Greece를 식민지로 삼았다는 사실조차 의문시 되었다. 그리고 Greece
Alphabet 어휘와 단어들이 셈-어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전의 주장들이 완전히 부정
되었다. 이렇게 되서 현실적으로 차용하여 사용된 Alphabet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데
주력한다. 또한 그들에 의해 가장 먼저 시도 된 것이 Greece People 들이 "모음"의
창조이었다. 이것은 마치 진짜 같은 허구이다. 두 번째로 Alphabet을 차용한
지역이 Rhodes → Cyprus로 옮겨지더니 마침내 그 존재마저도 의심스런 "시리아
해안"의 Greece 식민지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것은 차용이 사회적 혼합을
수반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인종적 오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순혈주의"가 등장한 것이었다.
Streets of Luxor
Jews People
그리고... Alphabet이 전래된 시기가 기원전 720년경...으로
도시국가와 Old Greece 문화의 형성기 이 후로 안전하게 낮춰
졌다는 점이다. 이로써 Creta 선문자가 사라지고 나서 Alphabet이
도입되기 까지 오랜 문명 세계가 열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인종주의"라는 개념이 없었다. 검은 피부색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으며, Old Egypt & Greece-Roman 시대의
예술품들은 각 인종의 특징과 피부색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지만
어두운 피부색을 열등함의 상징으로 여겼다는 증거는 찾아볼 수 없다.
유럽 열강들이 Africa 대륙을 식민지화 한 시점(19 C) 이후에야
학자들에 의해서 Egypt & Nubia People 들의 피부색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그들에게 부정적 Image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Roman의
"노예 제도와 피부색"에 대한 차별의식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반-유대주의"에 시달려온 유대인들은 1949년부터 점차로
완전한 유럽인으로 받아들여졌는데 이러한 사실도 최소한 대학살의
참혹함과 Israel 건국이 선행된 이 후의 일이었다. 더불어 1950년대에는
자신들의 뿌리(셈-족)에 대한 자긍심이 눈에 띄게 증가 되었으며, 이러한...
맥락에서 "정통 유대주의 혹은 시오니즘"의 배타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셈-족 문명 전체를 옹호하면서 극단적으로 공격적 성향을
보이는 학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학자들 중 고대 지중해 동부 지역에...

정통한 위대한 학자 일인은... Hebrew 문화와...
Hellenes 문화 사이의 상호교류 관계를 증명하는
일을 자신의 평생의 사명으로 여길 정도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가 상정한 가교는 "시리아 해안"의 고대 도시이기도 한
Ugarit & Creta 이었다. 기원전 14-13 C에 Ugarit에서 기록된
가나안 신화(해독)속에서 성서 및 Homeros의 연결성을 발견하였으며,
정통적 견해를 거슬러 Creta 선문자를 셈-어로 읽어냄으로써 공격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서 Ventris의 선문자 B 해독은
Greece 문화의 지리적 폭과 역사적 깊이를 확증하였다는 점에서 환영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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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에 속하는 Aegean Sea
유적에서 Levant 유물이 점차로 많은 수 발견됨에 따라 상황은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1985년에 이르면 서부 셈-족이
Greece Islands 뿐만 아니라 본토... 적어도 Thebes에도 Phoenicia
People 들이 정착하였다는 점은 받아들여진다. 또한 철기시대에 Greece에
대한 Phoenicia의 영향이 기원전 8 C 이전에 아마도 이르게는 기원전
10 C에 시작한 것으로 이제는 믿게 되었다. 아울러 Greece 적인 어휘에는
셈-어적인 요소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며, 최소 Thebes에 Egypt 식민지가
있었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Egypt 언어 및 문화 또한 Greece 문화 형성에
셈-족의 언어 및 문화 못지않게 심지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가설을 비로써 인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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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phabet...

Wikipedia / Alphabet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the_alphabet#The_Semitic_alphabet

Thessaloniki Saint Gregory Palamas
21 C
  "세계의 문자"로서 Alphabet !!
언어 혹은 부호를 구성하는 기호가 이미 !! 정의 된
유한 집합으로 E-mail 주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한글 자모의 전체, 영어의 "ABC" 영문 26자, 2진 부호의 0과 1)
Alphabet의 기원이나 배경을 살펴보면 "Roman Empire" &
Old Greece 등의 고대 문명과 다양한 민족의 명운과 함께 해오면서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하지만 대략 인정받고 있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할 듯싶다. → 4천년 역사의 세계 문자의 원형

"ABC"로 시작되는 Alphabet(로마자)의 26 자는 현재
지구상에서 말하면 "세계 문자"이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하면 절대적으로 사용되는 기본적인 언어
표현 수단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적은 문자수로도
모든 문장을 기록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반면 South Korea, China,
Japan
처럼 자신들의 언어를 표기하는데 필요하지 않더라도 Internet
Home Page, E-mail 주소(Languages html) 등에 현재 사용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세계 인구 수십억 명 이상이 Alphabet(로마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Alphabet은 기본적으로 26 자를 알고, 이해한다면 문장과
낱말을 만들고, 기록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는데 Alphabet의
"A" "B" 등의 각 글자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고 "하나의 음"을
만들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하나의 문자를
조합함으로써 낱말이 만들어지고, 문장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데 결국
Alphabet은 "ABC" 와 다른 문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음 문자
(소리글자)"로 낱말을 만드는 문자 System을 의미하게 된다. "표음문자
(表音文字)"
에는 소리를 "음소"단위로 표기하는 음절 문자가 있으며,
음소 문자에는 Alphabet, "한글, 가나" 등이 있고, "표의문자(表意文字)"라고
불리는 "뜻 글자"는 글자 하나...하나...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문자를
말하며 고대의 회화 문자, 상형 문자가 발달되어진 것으로 "한자(漢字)"
대표적이다. 따라서 Alphabet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자 체계는 세계 거의
모든 지역, 국가, 민족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표음 문자(음소 문자)라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다.

표음문자(表音文字) / Phonogram, 표의문자(表意文字) / Ide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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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Egyptian Cartouche of Thutmose III, Karnak, Egypt
Temple of Artemis
Phonemic Writing / 음소 문자(音素文字)
Armenian, Avestan, Bassa(Vah), Beitha Kukju,
Coptic, Cyrillic, Elbsan, Etruscan, Fraser, Georgian
(Asomtavruli & Nuskha-Khucuri), Georgian (Mkhedruli),
Glagolitic, Gothic, Greek, Hungarian Runes, Irish,Korean,
Latin, Manchu, Meroïtic, Mongolian, N'Ko, Ogham, Old Church-
Slavonic, Oirat Clear Script, Old Italic, Old Permic, Orkhon,
Pollard Miao, Runic, Santali, Somali, Sutton SignWriting, Tai Lue, Thaana, Uyghur

"세계인의 언어" Alphabet의 공통점은 역시 !! 영문자 A → Z
까지 26 자로 United Kingdom에서는 A → Z 26 자, Deutschland
에서는 30 문자로 구성되어지고 France에서는 40 문자가 사용
되고 있는데 26 자 이외의 다른 문자들은 필요에 의해 추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 부터 영문자(Roman Alphabet)는
왜 !! 세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점에 대해
풀어나가기로 하자 !! A→Z 까지 26 자는 기원전 1 C에서 약 500년
동안 유럽의 대부분과 "지중해 연안"을 지배하였던 Roman Empire에서
사용된 문자라고 할 수 있는데 Roman Empire를 세운 Italy People
"Latin People"에 덧붙여 "Latin Alphabet"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Empire
말기에 Christianity 기록을 통해서는 392년 Empire의 국교가 된 Christianity의
포교에 사용된 성서, 성가에 Latin Alphabet이 쓰였다고 하며, 최초 Roman의
공용 문자로 사용되었다고 한 기록과 이후에는 Christianity의 문자로도 사용되었다는
점 이러한 두 가지 정도의 이유에서 현재 유럽 각지에 Latin Alphabet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Empire에서 확장된 Christianity 세력, 포교에 사용된 특별한 서체 !!

United Kingdom → 26, Spin → 33,
Deutschland →30, France →40,
Italy → 26, Russia →33, Greece → 24

North-America(16 C), South-America(16 C),
India(15 C), Africa(15 C), Oceania, Southeast Asia(16 C)

España(Spain), United Kingdom(England),
Finland, Deutschland(Germany), France, Italia → Latin Alphabet

그럼 !! 시작하기 전에 자랑스러운 Korean Alphabet
훌륭한 점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다. 한글의 뛰어난 점은(훈민정음)
표음문자 중에서도 음소 문자이면서 동시에 음절 당위로 묶어 쓸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글에서는 "ㄹ"과 "ㅗ"라는 음소를 합쳐 "로" 만들고
"ㅎ"와 "ㅏ" 를 합쳐 “하”라는 문자가 만들어진다. 같은 원리로 "라", "호" 등
수많은 문자를 조합하여 문자가 만들어지는데 이러한 단순 명쾌한
System은 다른 문자 체계에서는 만날 수 없다. 같은 음소 문자이기도 한
English Alphabet에서는 각각의 문장의 "음"이 경우가 달라져 문자만으로 완전한
발음을 알 수 없는 경우 많은데 한글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다. 또한 자음과 모음을
몇 개의 기본적인 "기본자"를 바탕으로 다른 글자를 만드는 효율적인 방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 자음 ㄱ, ㄴ, ㅁ, ㅅ, ㅇ 등을 바탕으로 여기에 획을 더해 다른 글자를 만들고
모음은 ㅡ, ㅣ 등을 바탕으로 이를 조합하여 글자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ㄷ, ㄸ, ㅌ처럼
비슷한 발음의 글자는 서로 비슷하게 생겨 모양만 보고도 발음을 짐작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글은 배우기 쉽고, 쓰기 쉬우며, 실로 다양한 소리로 문자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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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기원전 32 C) → Egypt-South(기원전 20 C) → 원-Sinai(기원전 16 C)
→ Sinai Peninsula(기원전 15 C) → Phoenicia(기원전 11C) →
Greece(기원전 8 C, Cyrillic) → Etruria(기원전 7 C) → Latin(기원전 6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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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eroglyph(기원전 32 C) ↔ Wadi el-Hol(비문의 문자) ↔ 설형문자(楔形文字, 기원전 14 C)
The Town of Ortahisar
Cappadocia
문자의 발생은 인류 문명사에서 혁명적인 대사건이기도
하였다. 흔히 문자 이전의 시대를 역사 시대라고 구분하기도
하지만 선사 시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사실은 문자 체계를
좁은 의미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류 최초의 문자라고 하면
일견 Sumer의 설형문자(쐐기) 혹은 Old Egypt의 상형문자를 말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 근거하여 기원전 3,000년 무렵을 역사 시대의 시작이라고
정의한다. 최초의 문자는 처음부터 문자로 규정되지 않았으며 특별한
문법 체계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즉 !! 문법 이전에 사물을 지칭하는 단어와
어휘가 먼저 생겨난 것으로 또한 특정한 사물(새, 나무, 왕관)을 묘사하는
그림이었다는 점이다."은(殷)" 나라 시대 갑골문으로 시작된 China의 한자(漢字)는
실제로 그림을 기원으로 하며, 흔히... Alphabet을 그러한 상형 문자와
다르다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Alphabet 역시 !! 그림과 같은 원리로 탄생되었다.

원칙적으로 Alphabet의 탄생은 고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였던
Phoenicia People 들의 장부 기재를 목적으로 완성된 문자이기도 하다.
사물을 지칭하여 단어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단어들을 구성하여
어휘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문법체계가 생겨난 과정은 상형문자, Alphabet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 Sumer의 점토판(기원전 24 C), "은(殷)" 나라의 갑골문(기원전 16 C)

"문자의 원형"을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아득히 먼 곳으로
좀 더 가서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배경은 기원전 80 C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억지스러울 수 있으나 문자는 그려진 것이 아니라
2 cm 전후의 "토-큰" 이라고 불리는 점토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Anatolia, Greece, Iraq, Iran 등 지역에서 대량으로 발견되었는데
다양한 형태(원뿔 형, 원반형)로서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한 같은
장소에서 지름 10 cm 정도로 그 속이 비어 있는 "점 토 구"도 발견되었고 "토-큰"은
때로는 점토구 안에 넣어져 있었다고 하며, "토-큰"이야말로 "그림 문자"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증가한 인구, 가축 등 다양한 물품
들을 관리할 필요에 의해 "토-큰"을 이용해 기록을 시작하였고 토-큰은 상품의
전표 대신에 사용되었으며 "점 토 구" 안에 보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점차로
보관하는 행위가 다양해지면서 "점 토 판" 등에 기호로 써넣은 행위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Ebla-Syria
Ephesus
Bodrum Castle
핵심적으로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가면서 "가족"이나
친족 집단과 달리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향유하며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사회"이다. 낯모르던 사람을 만나 그림을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면 객관적이고 단순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림은
추상화 되었고, 기호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새 그림"을 제각각 그리다가 점차로 공통적인 모양을 갖추어
가면서 정형화시켰고, 단순화 하였던 것이다. 또한 이렇게 추상적인
형태를 확립시키며, 단순화 되었던 문자는 그림과 점차로 단절된다.
기본적으로 문자는 그림의 연장으로 생겨났으며, 그림의 직접성을 잃어
가는 대신에 객관적인 의미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문자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했던 것은 그 자체로의 발생이 아니라 통용이기도 하였다.

즉 !! 문자를 만들려고 한다면 이제 누구나
못 만들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자를
문자이도록 하는 것. 문자의 통용은 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문자는 사회적 약속이자 개인의
의지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도구인 셈이다."문자의 탄생"을...
문자 기호가 생겨난 것으로 보지 않고, 문자가 통용된
것으로 보면 문자의 성립보다 사회적 확립이 앞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참된 역사의 시작(문명 출발)
사회가 처음 형성되었을 시기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문자의 발생을 하나의 혁명으로 본다면 사회의 탄생은 그보다
좀 더 포괄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문자 이전의 혁명은 우선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핵심적인 것은 "도시 혁명"이었다.
도시라고 하면 원칙적으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공간을 의미하며,

인류 최초 도시는 Mesopotamia, Anatolia, Syria
일대에서 기원전 8,000년 경 무렵에 생겨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요한 점은 문자도 그렇지만 도시도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처음부터 출발점을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것이다. 도시는 단지 사람들이 모여 이룬 촌락과는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일차적으로 도시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경계선이 설정되어 있어야 한다. 경계선이라고
함은 "성곽"을 말하는데 그러한 점에서 역사학에서는 Jordan River...
인근의 "Jericho(예리코)" 를 최초의 도시로 간주 하고 있다. 참고로
인류학에서는 현재 Iraq 남부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Eridu(에리두)"
최초의 도시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인류 최초의 도시가 어디인지는
사실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건물터도 70개 정도에 불과하고 수용 인구
역시 1,000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그래도 Jericho는 어엿한 도시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한 근거는 기원전 8,000년경에 이미 성벽과 성문,
망루를 갖추고 있었다는데 있다. 주요 관점으로 성곽을 도시
형성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것은 오로지 서양적인 도시의 개념이다.
동양이 초기 도시들은 성벽으로 "시"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곳도
많다. 하지만 서양식 도시의 개념을 수용한다고 하여도 그러한 도시가
Jericho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현재 Jericho에 남아 있는 성곽의 유적은
기원전 8,000년 전의 것이지만 같은 장소 지하에는 그 이전의 시대에
속한 다른 도시가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Anatolia 지역의 고대 도시 Troy
유적은 19 C 후반 Heinrich Schliemann에 의해서 처음 발견되었지만
이 후 발굴이 진행되면서 같은 장소에서 여러 시대의 도시들이 마치 벌집
형태로 층층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것은 지진이나 전쟁과
같은 자연적, 인위적 변화로 도시가 버려졌다가 다시 건설되는 과정이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형성은 의식적인 약속의 소산이 아니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도 도시가 생겨났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즉 !! 기후와 지리적 여건을 종합하면 가능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먼저 열대 지역은 수 백 년 만년 동안 인간이 살아온 방식인 수렵-채집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대규모로 몰려 살아 갈 필요가 없는 지역
이었고,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시기가 대략 기원전 13,000년 이라고 할 때
오늘날 온대 지역에 포함되는 Europe & China는 추웠을 것이다.
따라서 도시가 발생할 만 한 지역은 Middle East 지역 밖에는 없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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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culaneum-Hercules
Abu Simbel
Fertile Crescent
아랍권에 있는 Mesopotamia 문명과 지중해 문명의
발상지 !! 실제로 Mesopotamia 지역과 Nile River 유역은
농업 생산성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또한 인류가 알고
있는 최초의 문명이 유래하는 곳으로 1948년 이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이 향상되면서 과학적으로도 확인된 지역이기도 하다.

Greece-Roman 문명의 토대가 된 고대국가인
Mesopotamia, Assyria, Egypt, Phoenicia도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고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 비교적 비옥한
지역을 말하며, 창세기에 나타나는 Hebrew People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남쪽의
Arabia Desert와 북쪽의 Armenia 산맥 사이에 자리 잡고서 Babylonia,
Persia 남서지방에서 Tigris-Euphrates River를 거슬러 올라가 Assyria까지
뻗어 있다. Assyria 동쪽에 있는 Zagros Mountains로 부터 서쪽으로
Syria를 지나 지중해에 이르고 남쪽으로 Palestine 남부까지 내려간다. Palestine
& Egypt 사이에는 Sinai Peninsula 가 있으나 Mesopotamia & Syria 사이에
놓여 있는 사막보다 큰 것은 아니기 때문에 Nile River 유역까지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대체로 문자는 고도의 문명권에서 발달되기 시작한다.

반대로 문자는 문명권의 발달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상호 보완적인 성격이 강하게 작용
되었는데 상형문자 + 설형문자가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 체계는 복합적인 기능을 가진 수없이 많은 기호
들이 사용되었고, 이렇게 복잡한 요소가 작용되었기 때문에 상당
기간 훈련하고 연습해야만 했다. 그래서 문자를 익힌 사람들은 모두...
지식인들이었으며 무제한 적인 권력을 확보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Mesopotamia 일대에서는 그들을 "서판의 군주"라고 하기도 하였다. 문자의
발명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지만 "셈족의 땅" 서쪽 지역에서 발생
되어진 것은 분명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그 기원은 Egypt의 상형문자와
Sinai Peninsula에 남아 있고 해독하기 어려운 비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대체로 Alphabet을 발명한 사람은 아주 현명한 자로 추정할 수 있을 듯싶다.

"두음"에 맞춰 명칭을 붙였고,  "소, 집, 갈고리..."등의 형태를
갖추고, 몇 개의 획, 곡선이나 원으로 단순화시켜 문자 기호를 만든
것이다. 초기 Alphabet의 경우 Phoenicia-Canaan-Hebrew-Aram
People
등이 사용하였으며, 설형문자의 경우 Assyria Empire에도 보급
되었다. Aram Language로 된 "사해의 두루마리"의 저자들은 "서판의
군주"처럼 존경을 받았고, 특권을 누렸다. 또한 지중해 Cyprus에서 전래 된
Elamite Language(엘람)은 여전히 몇 세기에 걸쳐서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인 상황(행정)이라면 Alphabet이 널리 활용되고, 최고의 가치를
누리게 되었다. 대략 기원전 4000-3000 ...문명은 Mesopotamia로부터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었다. 설형문자가 체계화
되기 전에 이미 !! 동부-지중해의 여러 지역과 India에서 문자에 대한 관념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진다. 상형문자는 기원전 4000-3000년의 중-후반기에 이르러
Nile River 계곡에서 발전되었고, 사료가 불충분하지만Hittite의 상형문자가
형성된 시기는 "수메르-셈족" 문화가 기원전 3000-2000년 Syria에 나타나기 전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Levant-Cyprus-Anatolia의 "음절 문자"의
원형도 마찬가지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Egypt
문명은 명백하지만 "상-이집트와 누비아"의 풍요로운 왕조
이전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더욱 그러한 문화가 Africa에서
기원 했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왕조 이전
말기와 제 2 왕조 유물에서 보이는 Mesopotamia의 엄청난 영향은
Egypt 문명이 동쪽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왕조의 통일과 확립이 촉발
되었음을 확인(기원전 3250)시켜준다. 때문에 문화적 혼합이 더욱
복잡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Mesopotamia 문명을 이루는 셈족의...
요소와 Egypt 사이에 언어와 문화적으로 근본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2500년경의 문서는 Kurdistan(쿠르디스탄)에서
Cyprus(키프로스) 까지 뻗어있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한 부유하고 세련된 국가들 간의 제휴를 묘사한다.
고고학에서 알려주는 것과 같이 이러한 시기에 인류 문명은 좀 더
멀리까지 뻗어나갔으며, 궁극적으로 Indus → Afghanistan
걸친 Harappa(하라파) 문화 그리고 Caspie Sea → Black Sea →
Aegean Sea의 "금속 문화권(청동기)"까지 확장되었다. Mesopotamia-
Sumer 문명은 공동의 문자와 문화도 단단하게 확립하였고, 주변부
문명 역시 !! 동일하게 문명화 하였지만 고유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적
독자성을 보유하였다. 예컨대 Creta에서는 "토기시대" 구분이기도한
Minoan 1기 초창기 그러니까 기원전 3000-2000년의 시기로 접어들 무렵
Levant로부터 상당한 규모의 문화 유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형문자는 지배적인 문자가 되지 못하였으며, "Creta"는
결국 Mesopotamia-Syria 문명에 완전히 통합되지 않았다. 물리적인
거리를 제외할 때 가장 타당한 이유는 Creta People(원주민)의 문화적 탄력성
그리고 지리적으로 "이집트-셈족"의 문화적 영향권 사이에 위치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inai Peninsula
King of the Narmer Palette
Levant-Africa 사이에서 동시에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은 고고학적인 측면에서도 그대로 노출되었다고 한다.
Creta & Aegean Sea 여러 지역에서 Egypt-Syria 유물이 다량
출토 되었다. 근동과 마찬가지로 Creta Island에서도 기원전 3000년 경
"구리와 비소"를 혼합시켜 청동을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항아리 제조에
물레를 이용하기 시작하며, Cyclades(키클라데스)의 축성술과 Palestine에서
발견된 같은 시기의 축성술은 놀랄 만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변화가 근동에서 다소 일찍 발생한 것이 분명하고 두 지역의 접촉이 의심의
여지가 없음을 감안할 때 독립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이유로는 차라리 Aegean Sea People 들이 교역과
정착 과정을 통해 자극을 주었고, 그러한 자극에 반응하여 독창적
지역문화를 발전 시켰다는 주장이 좀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0-2000년 청동기를 사용한 곳에서는 대부분이 문자들을 사용
하였다. 그러한 시기 Aegean Sea 지역에선 문자를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다.
Greece & Anatolia 반도의 기후는 중동이나 북-서 인도와 같이 건조한
지역에서도 증거(사료)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이었다. 1975년 "Ebla
(에블라)"
에서 점토판을 발견할 때 까지 Syria에서 기원전 3000-2000년경에 문자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Syria에 교양을 갖춘 문자
사용자층이 있었으며 "에블라"의 학교에서 학습받기 위해 먼 곳으로부터 사람이 찾아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 Aegean Sea 지역에 문자가 있었음은
의미 하는 보다 심화된 논점은 기원전 2000-1000년의 문자체계인 선문자 A, 선문자 B,
Cyprus의"음절 문자"는 동일한 원형을 공급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또한 커다란
차이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확인된 글자체의 발전과정을 비추어 볼 때...
그 정도의 차이가 나타낸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초기 청동기 문명은
기원전 23 C에 붕괴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Egypt는 제 1 중간에 위치한다. Mesopotamia
북쪽에서 이민족의 침입이 있었고, 문명세계 전체가 침입과 급작스런 기상...악화로
인한... 소요와 내부의 폭동으로 고통을 겪었다. 아마도 Phrygia Language 혹은
Armenia Language를 사용 했다고 여겨지는 족속들이 Anatolia를 침입한 것도 이때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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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albek...
House In Cappadocia
순수한 Alphabet의 탄생과정을 살펴보면 지중해 동쪽의
해안을 따라 북상하며 이동한 셈이 되는 것이다. Egypt 남부에서
Sinai Peninsula로 전해지고 그곳에서 현재의 State of Israel가 있는
Palestine(Phoenicia)으로 이어졌다. 여기 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500년에 이르고, 문자는"원-시나이 반도"에서 Phoenicia Alphabet으로
변환되었다. 그 뒤 문자는 지중해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가는데 Phoenicia →
Greece → Etruria → Latin People
에게 전해진다. 이들은 Roman Empire를
세우고 400년 이상 서-유럽의 대부분 지역과 지중해 연안의 광범위한 지역을 지배하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문자이기도 한 Latin Alphabet은 제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 영향을 주었으며, Latin Alphabet은15 C
대항해 시대에 탄력을 받아 Spain-United Kingdom 등에 의해서
South-North America, Africa, Asia로 그들의 "자본주의, 민주주의"와
함께 유입되었고, 식민지역의 문맹을 퇴치한다며 종속된 원주민들의
교화 사업에 적극적이었다. 더불어 종교 또한 강요하였으며, Alphabet
진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지중해 한복판에서도 한 때는 해독되지 않았던
문자가 널려있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고고학자 Arthur- Evans에 의해
8년에 걸쳐 Creta 문자의 해독작업이 이뤄지는데 내용은 발굴 작업을 통해
확보한 Creta Island의 3종의 문자가 새겨진 점토판이다. → 선문자 A,
선문자 B, Phaistos Disc...(파이스토스 원반)...
Phaistos Disc(원반형) 점토판
표면에는 앞뒤 합계 45 종, 242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문자의 원형은 완전한
그림 문자이지만 문자의 수효가 적은 것은 이러한 문자가 표의 문자가 아님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미 해독 문자는 그림 문장으로 Alphabet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기원전 2000년 Greece, Creta Island 궁전의 웅장함, 놀라울
정도의 "부"와 세련된 문화적 감각, 거대한 건축물, 다양한 회화적
요소는 현재에 이르러 발굴 작업을 통한 연구 과정을 통해서 완전한
의미를 얻을 수 있었으며, 당시에는 유럽 문화가 전성기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이러한 시점에 중요한 것은 인도-유럽 어 족속들이 Greece 땅에 정착
하기 이전 바로 그곳에서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학계에서는...
그 사람들을 Aegean People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Greece 뿐만 아니라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섬들과 Anatolia 남서쪽에 거주하였는데 "인도-유럽 어 족속"은
현재의 Poland & Turkistan 중간 지역으로부터 유입되었던 것으로(지중해 남서쪽),
추정된다. 이들은 여러 식물이 이름과 강과 산, 섬의 명칭을 원주민의 언어를 차용하여
활용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강과 산은 어느 지역, 국가이든지 가장 영속적인
경향을 지니는 지명이다. Great Britain의 경우 강과 산의 명칭이 대부분 Celtic Language
이루어져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선, 인도-유럽 어인 것도 보인다. 따라서 "이집트,
셈-어"로 된 강과 산 이름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깊은 문화적 침투를 암시하는 것이다.
Phaistos Disc ...Creta
Hieroglyph ...Egypt
또한 도시의 명칭이 자연의 명칭보다도 문화에서
문화로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되었다. Greece에 인도-유럽
어의 도시 명칭이 거의 없고, 동시에 도시 이름의 경우 이집트,
셈-어에서 그렇듯 한 어원을 찾아낼 수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교역
차원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강한 접촉이 선행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당시 !! 선문자 A로 쓰인 문자 체계에도 혼용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Homeros의 "오디세이아"를 통해 Creta의 원주민 "시돈, 도리스 족속"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Herodotos를 통해서는 펠라스기 족속이
야만적인 족속으로 그들만의 언어 체계를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Aegean
People 들은 도시를 이미 기원전 3200-기원전 2500 경에 Aegean Sea
주변에 형성시키고 Greece 지역 까지 영향을 미친다. Creta Island에서는 유럽
최초의 고급스런 문화가 탄생하였고 섬세하게 다듬어지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 후...

Hellenism의 도시국가 등에 Aegean 들의 축성술이
전해지고, 만들어진 가장 뛰어난 문화, 정치적 업적 등이
두드러지게 된다. 대표적으로 Greece 질그릇(토기)은 여성적인
Line이 강조된 점이 특징인데 Greece 조형 예술에 대한 재능은 모두
Aegean Sea 문명에 기인하고 있다. 즉 !! Greece의 독자적인 문명
체계라기보다는 그 배경에 Old Aegean Sea 문명의 숨결이 확실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초기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이전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두 개골은 기원전 1900-기원전 1580에
이르면 부분적으로 인도-유럽 어 족속과 함께 혼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정복의 시기"에 흔희 그렇듯이 이주한 족속들이
원주민 여성들과 맺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남성들의 두 개골은
주로 인도-유럽 어 족속 것이었고, 여성들의 두 개골은 Aegean People
족속들 것이었다. 참고로 이러한 지역의 인류 정착에 관한 유물은 Neanderthal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Thessalonica로부터 동쪽으로 37 km
떨어진 Petra의 석순 동굴에서도 이러한 유골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반면에
초기 Greece 문화 형성기에 근동이 Aegean Sea 문명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객관적인 사실에 비추어 다소 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최초의 절정기는 기원전 21 C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 Egypt 역사는 제 1 중간기의 와해에서 회복하여 이른 바 새로운 11
왕조가 확립되어 있었다. 제 11 왕조는 Egypt를 재통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Levant를 공략하였으며, 고고학적 증거를 거론하면 더 먼 지역 까지 영역을 넓힌 것으로 보인다.

한편 Creta는 확실히 그러한 범위에 포함되었는데 Greece
본토 역시 !! 그러한 추론의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시 "검은
피부"를 가졌던 상-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수대에 걸쳐  "매와 황소"의 신...
"멘추"를 신성한 후원자로 삼았다. 같은 시기 Creta에서도 왕궁이
세워졌고, 궁전 벽에는 황소 숭배 사상을 엿 볼 수 있는 그림이 발견되기도
했다. Minos People들의 왕과 Creta에 관한 Greece 신화에서도 황소 숭배는
그 중심에 위치하였으며, 역설적이지만 Creta의 번영이 Egypt Empire의 융성을
직 간접적으로 반영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실이 증명된 것이 Thebae 바로 북쪽에 예로부터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둔덕이 발굴된 사실로서 둔덕을 흙으로 만든 계단식 Pyramid로 꼭대기에는
벽돌로 되어 있으며, 그 안에는 기념비적인 기원전 21 C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Homeros가 언급한 고대 전승도 일치하는 것이 "Amphion(암 피 온), Zethos
(제 토 스)"가 Thebae의 최초 건설 자이었고, 그 도시가 파괴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또 다른 건설 자 신화 속 인물 Cadmos(카드모스)도 근동에서 건너 왔다는 사실이다. Egypt
Pyramid처럼...Amphion & Zethos의 무덤은 태양과 관계가 있고, Greece Thebae도
Sphinx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욱이 Thebae는 12 궁의 황소자리와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고 있다.
Thebes By Charles Francois Jalabeat
Abu Simbel
또한 학자들에 의해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지만 Thebae의
황소 숭배 사상과 Creta의 황소 숭배는 유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11 왕조와의 연관성 주목 !!)이다. Creta에서 이 후 600년
동안 황소 숭배로 제식을 유지한 반면에 Egypt는 기원전 2000년 직 후...
제 12 왕조의 발흥과 더불어 왕실에서 "멘추 숭배사상"을 폐지하였다.
그 대신 새로운 왕조는 상-이집트의 숫양 신 Amon을 수호신으로 삼았다.
Amon = 멘데스(숫양 / 염소) 숭배의 흔적도 Aegean Sea 주변에서 발견되었고,
대개는 Zeus와 관련된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영향인 듯하다. 그만큼 Egypt-
Pharaoh 들의 영토 확장이 왕성하게 이어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예" 라고 할 수 있다. 또한 Athens의 최초 건설 자 Cecrops(케크롭스) 사이에도
미묘한 연관성이 보이며, 실제 고대 사료에서는 그를 Egypt People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파급의 물결이 크게 작용했던 것은 Hyksos 시대에
이르러서였는데 이에 관한 전승은 더욱 명확하다. 이들은
북쪽에서 온 침입자로 기원전 1720-기원전 1575년 까지 최소한
하-이집트를 지배하고 통치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압도적으로 셈-어를
사용하던 족속이기도 했다. 후기 고대(기원 후 3-6 C)이래 연대기
작가들은 훗날 Egypt 제 18 왕조가 증오의 대상이었던 Hyksos를 쫓아
냈다는 기록과 Israel People 들이 Egypt에 억류(노예)되었다 탈출하였다는
성서의 전승 그리고 "다나오스"가 "아르고스"에 도착했다는 Greece 전설
사이에 관련성이 있다고 보았다. Greece 전승에 따르면 Danaos는 Egypt &
Syria People이지만 Egypt에서 건너온 것은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
수령 연대학"
에 의하면 사실로 보여 진다. 따라서 Greece에 새로운 정착민이
나타난 시대를 Hyksos 시대 말기로 잡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도 사실이다.
또한 양 연대 측정법에 따른 결과 Creta Island에서 발굴된 고고학적 증거는 Greece
도착 시점이 Hyksos 시기 초기인 기원전 18 C 말엽이기도 하다. Greece 전승은
"다나오스"를 관개시설 도입과 "카드모스"를 특정 유형의 무기와 Alphabet
그리고 수많은 종교의식과 연결 짓는다. 그렇지만 "관개"는 좀 더 일찍 진전
되었고, "전차와 칼" 도입을 포함하여 다른 차용물 또한 Aegean Sea 주변으로 유입되었다.

종교의 경우 이러한 시기 도입된 제식은 Poseidon & Athena
집중되었으며, Poseidon이 황야와 바다의 신으로써 Hyksos의 숭배를
받았던 Egypt의 "세트" 그리고 셈-족의 "얌, 야훼"와 일치 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Athena는 이집트의 네이트 셈족의 신으로는 "아나트"이었을 것이다. 또한
Aphrodite(아프로디테), Artemis(아르테미스) 같은 다른 신의 숭배 의식도
일반적으로 Greece에서는 기원전 17-16 C에 형성되어진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Greece 어는 인도-유럽 어의 구조 및 기본적 어휘에 복잡한 비...인도 유럽어가 혼합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러한 언어체계 자체도 Egypt와 서부 셈-어에서 상당 부분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이 증명되는 것이 오랜 시간 지속한 Egypt, 셈-족
정복자의 지배시기와 들어맞기 때문이다. 기원전 15 C 중반 18 왕조는 Levant 에서
강력한 제국을 확립한 이 후 에게 해 지역에서 공물을 받았다. 때로는 그들의 유물이 쉽게
발견되기도 했는데 그것은 Egypt의 영향력이 지속되었다는 의미인 셈이다.그리고...
기원전 12 C 역사 속에서 파괴적인 단절의 시기가 도래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사건을
Doris People의 침입이라고 하는데 고대에는 Heracles 가문의 귀환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파괴적인 이주자들은 Greece 북서 변경에서
온 것이 분명하며, 그들이 파괴한 Mycenae 궁정의 "중동..."
문화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이 스스로
Heracles 가문이라고 한 것은 흥미로운데 그 이유는 Heracles의
신성한 자손이라는 사실을 주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쫓겨난 왕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복자의 후손이기도한
고전기와 Hellenism 시기의 Doris Type 왕들은 자신을 Egypt &
Phoenicia의 후손이라고 믿었을 것이 확실하다. 참고로 도시국가와 훗날
Marxism People들이 말했던 "노예제 사회"가 비로써... 기원전 9-8 C Phoenicia
에서 기원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Phoenicia의 과학, 철학, 이론 정치학이
이러한 분야를 선도하였던 Greece People에 의해 전달된 과정에 대해 생각할 가치가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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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ress In Sidon-Lebanon
Perseus, from Pompei-Mycenae
Poseidon, Erectheus, Cecrops
Turning Point
Egyptian Hieroglyph
한마디로 사람 혹은 동물 등의 형태로 표시되는 문자이며,
오래된 것은 기원전 32 C, 후대의 것으로는 기원전 5 C에 발견된
것 까지 알려져 있다. 문자의 종류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고 하는데
적을 때는 700 종 많을 때는 6,000 종이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문자수로
인하여 "문자 해독"을 위해 연구하는 학자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며,
보편적이지만 30 개 전후로 글을 쓸 수 있는 Alphabet System과는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한자(漢字)와 같은 "스스로 뜻을 가진 문자(표의 문자)"라면 이러한
숫자는 많은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대략 "은(殷)" 나라 시대 문자수가 비교적
적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수(隋) 왕조 시대에 가장 적은 수
(4,000 종)의 표의문자가 활용되었다. 따라서 Hieroglyph의 어중간한 문자수가
해독을 더욱 어렵게 하였던 셈이다. 시대적으로 유럽에서 Greece-Roman 시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 즉 !! 16 C Renaissance 시대
이 후... 이러한 수수께끼에 많은 학자들의 도전이 줄지어 이어졌으며 대다수는 실패하고 말았다.

Abu Simbe(아브심벨), Karnak(카르낙) 대 신전,
Pyramid 등 각지의 유적이나 발굴되고 있는 유적에는
어김없이 사람 혹은 동물을 형성화 한 문자 Hieroglyph가
그려져 있다. 발굴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King of the Narmer
Palette
(화장 접시)로서 기원전 32-31 C 때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장 후대의 것은  "피라"에 새겨진 비문이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Egypt에서는 30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을 거치면서 Hieroglyph가
사용되었는데 "피라"의 신전에 쓰인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쓰이지 않아 그 읽는 방법마저 수수께끼가 되었다. Hieroglyph
이외에도 Hieratic(히에라틱), Demotic(데모틱)이라는 고대 문자가 있었다.

이러한 3 종류의 문자는 병용되어 쓰이기도 하였고,
Hieratic은 Hieroglyph를 분해해서 사용된 문자인데 말하자면
행서체에 속한다. 반면 Demotic은 위에 언급한 Hieratic을 더욱 분해
하여, 그린 문자로서 같은 표의 문자 체계이기도 한 한자(漢字)로
말하자면 "초서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Hieratic & Demotic
점차로 분해 사용됨에 따라 Hieroglyph가 가진 그림 문자의 느낌이 희석
되어 지면서 해독이 어려운 문자로 남겨지게 된 것이다. 참고적으로 Hieroglyph
+ Demotic + Greece Alphabet으로 구성 된 Rosetta Stone(1799, 3 종류의 문자체)이
발견되었고, 빛의 파동설로 알려진 물리학자 Thomas Young(1773-1829)이
1814년 처음 도전한 이 후 France Jean Champollion(1780-1832)이 해독작업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이들 모두 "고유명사"에 주목하였고, 고유명사 부분을 다른
지역에서 발견된 Hieroglyph와 비교하면서 분석하여 하나의 글자마다 "음"을 특정 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해독 결과를 전체 Hieroglyph의 해독에 응용
하였다. 결과적으로 1,500년 동안 풀리지 않던 Hieroglyph
System이 마침내 밝혀진 것이다. → 1822 또한 "와 디 엘 홀" 비문
발견 이후 Hieroglyph는 더 이상 완전한 Alphabet이 아니었지만 Hieroglyph의
일부를 표음 문자의 일부로 사용하고자 했던 것은 기원전 32 C에 이미 존재하였던 것이다.

Jean Champollion의 문자 해독 결과 Hieroglyph는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함께 알려졌다. Alphabet 적인 요소, 표의
문자 요소(문자의 뜻을 그대로 읽는 것), 이외에 1자 2음, 1자 3음을 가진
문자도 있었다. 또한 발음을 하지 않지만 남성, 여성 등의 뜻을 첨가하는 문자도
있었고, Hieroglyph는 모음이 없는 문자(자음만으로 연결된 구조)로 밝혀진 것이었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Hieroglyph,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는
Hieroglyph, 이름과 같은 고유명사는"Cartouche(카르투슈)"에 넣어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 위에서 아래로
세로쓰기 등을 할 수 있었는데 가로쓰기에서는 쓰기 시작한 방향으로 문자를 향하게
하였다.그리고 마지막에는 성별을 나타내는 "결 정 사(발음하지 않은 기호 형태)"가 첨가
된다. 주목되는 것으로 배열이 특이한 것은 당시 "필경사(서기)"의 개인적인 역량에 의해서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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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 of Ugarit Gods AO29,393
GAR Creta-Giovani
고대 근동에 존재했던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것들 중 Ugarit는 가장
아름다웠고, 번영하였던 도시이었다. 그것도 기원전 2000년 무렵에 말이다.
따라서 Ugarit 유적의 발굴은 삶과 죽음, 신과 이승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제공
하는 기회의 장이었다. 종교적 측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고, 역사적으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만 Israel People보다 먼저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민족이기도
하다. 그 당시 막강하기만 하였던 대표적인 항해 도시 Sidon & Tyros도 역시
그들의 것이었으며, 그들은 기원전 814년에는 고층 건물의 도시 Cartago를 건설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성경이 쓰이기 전부터 살았고, 성경에서 이교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후손이기도 했다. 이들을 Christian들은 그저... "페니키아 사람"이라고 하였다. Phoenicia-
People 들은 기원전 1250년 항해를 시작하게된다. 최초로"보라 색"을 만들어낸 제작자
이며, 상인, 도시 설립자, 위협적인 항해 세력으로 지중해에서 군림하였다. Canaan People이
바로...그들의 선조(조상)가 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Palestine-Syria 등지에서 살았던
이들은 잿더미가 된 고대 폐허의 도시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이 후 Israel People
들이 유입될 시점에 그들의 도시는 짜임새 있고 섬세한 사회 질서를 완성해 놓고 있었다. Ugarit

문명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Canaan 땅의 모든 유적 발굴이
현실화 되었으며, 유적에서 출토된 점토판의 해독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발견된 유적은 5개 층으로 구조를 형성(층서학)하고,
있었으며, 석기 시대부터 Ugarit가 멸망(기원전 1100년)하기 까지 인류의
다섯 단계의 문화를 보여준다. 다섯 번째 층을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며
당연하지만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제일 위에 위치한 첫 번째 층은 기원전
1500-기원전 1100사이의 뛰어난 도시들의 형태를 보여주고 이곳에서
Babylonia의 "설형문자"와 "아카드 어"로 쓰인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문서들은 대부분 경제와 통계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Babylonia
설형문자로 쓰인 사전적 문서에는 Sumer 언어 같은 문자 체계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선문자 B에 대한 기록들과 다양한 토기 종류들
Egypt Hieroglyph가 새겨진 동상들도 발견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설형문자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Phoenicia People의 선조(조상)가 사용하였던 문자이기도 하다.

표기 방식은 Mesopotamia 방식이고 단어의 종류와
목록들은 점토판에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Mesopotamia의
점토판의 문자는 수 백 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러한
글자들은 각각 하나의 음절 혹은 단어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Ugarit
문자는 대략 28-30개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것은 기원전 14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인류 최초의 Alphabet
이라 할 수 있겠다. Ugarit Alphabet은 가나안 알파벳으로서 28개의 "음"으로
구성되었고, 그 중에서 26개가 "자음"이다. → Hebrew 23 자, Phoenicia 22 자로서 구성

발견된 점토판은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커다란 점토판에는
전설과 신화 작은 점토판에는 편지, 계산서, 지시문, Oil & Wine
같은 상품 품목, 입양증서, 판매에 관한 법적 계산서 등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발견된 점토판 문서를 통해서 이미 당시에도 "노예"가 거래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고, 흔하지 않던 "은화"로 결제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
되었다고 한다. (3000년 전 Ugarit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 점토판에
기록된 내용은 기원전 14 C에 기록되었지만 담겨진 내용은 좀 더 오래된 것이었다.
그 내용들이 구전되어 왔거나 Alphabet 체계가 아닌 고대 표시 체계를 통해서
전해져 왔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가나안과 이스라엘 민족"이 같은 땅에서 살며
비슷한 삶의 형태를 갖췄고, 같은 신화를 알고, 같은 신화를 섬겼던 사실로 미루어 보아
두 족속이 동일한 근원을 가진다고 추정할 수 있다. 때문에 Ugarit 점토판은 유대 민족의
가장 오래된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해준다. 참고로 Sumer 문명에서도 이미 문자가 있었으나
음절이나 하나의 완전한 단어를 통해서 언어를 표현 했으므로 Canaan = Phoenicia
사람들이 최초로 Alphabet을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현재의 Alphabet과는 전혀 비슷하지도
않은 고대문자 중에 "1자 1음"이라는 Alphabet의 특징을 갖고 있는 문자가 있었던 셈이다.
사실 Latin 계열의 문자와 관계없어 보이지만 고대의 Alphabet으로서 상실시킬 수 없는 문자 체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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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of Andrea Doria as Neptune
Temple of Hadrian Ephesus
당대의 New Alphabet은 지중해 동부 연안의 북부에 위치했고
정치적 중심지이었던 고대 도시 Ugarit 유적에서 발견된 "설형문자"
체계인 것이다. 해독된 결과는 30자(1자 1음)로 구성되어 있었고, Ugarit
설형문자는 Alphabet이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러한 설형문자가 ABC 순으로 배열된 점토판이
발견됨으로써 배열된 순서를 보면 Phoenicia 문자와 비슷한 순서이었다고
하는데 설형문자가 사용된 지역에서는 문서 창고와 같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었고,
그러한 곳에서는 설형문자로 새겨진 다수의 점토판이 함께 발견되고 있었다.
그럼 여기서 같은 시대에 공존하였던 국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 지중해 동부 연안
Syria에서는 "우가리트 왕국"이 번영하였고, Egypt에서는 18 왕조의 꽃피던
시기로서 훗날 번영한 Phoenicia People 들은 당시만 해도 확고한 지역적 세력을
갖고 있지 않았던 때이기도 하다. 설형문자는 Ugarit 뿐만 아니라 다른 고대
도시들에서도 사용되고 있었으며, 마치 현대 유럽에서 Latin Alphabet를 기반으로
각국의 문자가 있었듯이 Iraq-North(= Assyria), South(= Persia, Babylonia) 등 국가마다
미세하게 문자 자체가 변용, 사용되고 있었다. 따라서 Hieroglyph 해독에 있어서
"Rosetta Stone"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듯이 설형문자에도 해독의 돌파구가 된 비문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West-Iran Zagros Mountains의 암벽에 새겨진 Behistum(베이스툰)의 비문이다.

그렇지만 1자 2음으로 구성된 문자체계로 밝혀짐으로써 결과적으로
설형문자 등에는 Ugarit  문자만이 Phoenicia 문자와 유사한 Alphabet인 셈이다.
특히나 Egypt가 패권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상황에서 Ugarit는 주변의 여러
왕국과 관계를 맺고, 정치, 외교, 경제(교역)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자연스럽게 성립
시키고 있었으며, Creta와는 활발한 무역이 선결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자원 부국
(구리)Cyprus와 마주보던 "시리아 연안"의 작은 도시로서 군사적으로도 결코 물러섬이
없었던 고대 강소국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어찌되었던 Ugarit는 다양한 족속들을 연결시켜
주면서 국제적인 도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고대 부국으로 존재하였던 것이다.
또 다른 의견으로 믿거나 말거나 Ugarit...Ceta의 식민지이었거나 무역 중심지 이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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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saloniki-Greece
앞서 설명되었듯이 문자의 가장 초기 용도는 사물에
대한 기록이었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사물의 성질을 기록
하거나 그러한 사물의 소유권자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데
실제로 일인칭 형태로 기록되어 진 사례(도자기, 비문)를 발견
할 수 있다. 또한 귀족들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일반 대중을
위한 것 일 수도 있었다. 쉽게 오늘날의 시각으로서 Communication은
현대적 개념이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14 C에 등장하는 개념
이지만 처음에는 "함께 있는 방식"이라는 뜻 이외에는 없었다. 이 후 16 C
전달된 내용 혹은 의사소통된 내용을 뜻하였고, 20 C에 들어서면서 비로써
중요한 용어로서 인식되어 그 의미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Communication
이라는 단어가 점차로 중요성을 띠기 시작한 것은 부분적으로 "대중적 매체라는
전달 방식의 진화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오랜 시간을 거쳐 양적 질적으로 발전한 것에 기인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이 암흑기라고 부르는 최소 3 C 시대 동안
문자가 없었다. 암흑시대라고 불리던 이유도 쇠퇴기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남아 있는 문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혹은 화제로 유실되어 버리고 자연 재해가 쓸어가기도 했다.
오늘날 Alphabet의 기원을 찾을 수 있는 것들이 문장 형태로 발견
되고 있다. Creta Island의 점토판(선문자 A, 선문자 B) 그리고
그림문자로 보이는 Phaistos Disc(기원전 17-16 C)의 발견은 Minos
문명의 발굴, 문자 해독이라는 사실보다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러한 공로는 Sir Arthur Evans
(1851-1941)
, Michael Ventris(1922-1956)에게 돌려져야 한다. "에번스 경"은
이러한 문자를 선문자 A, B라고 명명하였다. 굳이 선문자라고 한 것은
문자가 선을 따라 정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 → 오른쪽으로 씌어져 있는
선문자 B의 문자 체계는 선문자 A에서 파생되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15-13 C의 것으로서 "에번스 경" 강의를 듣던 Michael Ventris가 분석(해독)을
시작하여 누구보다도 빨리 해독 하였다. 선문자 B는 표의 문자 + 음절
문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시대적으로 Phoenicia Alphabet(기원전 11 C) 보다 앞선다.

반면 선문자 B의 모체 문자이기도 한 선문자 A는
미해결된 문자로서 기원전 17-16 C 의 것이며 대략 700종의
문자로 구성되어 있다. 선문자 B를 통해서 90 %의 문자를
읽을 수는 있으나(발음을 할 수 있는 정도) 주변의 언어와 분명
하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해독은 불가하다고 한다. 해독이 완료된...
선문자 B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Greece People 들이 첫 문자
체계로서 뜻을 나타내는 기호와 발음을 나타내는 기호 그리고, 단어와
단어 사이를 구분 짓는 막대와 같은 한정 기호 이렇게 3 부분으로 되어 있다.
Santorini Sunset
Linear A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음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그 숫자가
80개에 이르며, 각각의 하나의 음절-모음 혹은 자음과 모음을
표시한다. 그래서 음절 문자 체계라는 명칭이 붙여지기도 하였다.
뜻을 나타내는 기호는 사물을 뜻하는데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 점으로 미루어 선문자 B는 기본적으로 표음 문자이며 같은
시기에 Egypt-Mesopotamia에서 사용한 문자보다 좀 더 단순화된 체계로
되어 있다. 이를테면 표의 문자에서 22-24개로 구성되어 가장 경제적인
Alphabet으로서 향하는 중간 단계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음절체계는
Greece Language를 위해 발명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발음 구조와
음절 구조와는 다른 구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Greece Alphabet에는
말이라는 뜻의 hippos와 같이 "s"로 끝나는 단어가 없다고 한다. 그 이 유는 "s"는
음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문자 B는 Creta People 들이 사용한
선문자 A를 답습하였던 것으로 아마도 초기 그리스인들이 변형하여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선문자 A가 발전된 시기는 Mycenae 문명이 꽃피던 시절이다.
당시 문명을 Mycenae 문명이라고 부른 까닭은 Mycenae가 수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Mycenae가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장소이면서 가장 중요한 장소 중의 하나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Palais(궁정)이라고 불리는 행정 중심지들이 Mycenae를
둘러싸고 있는 도시들은 다스리며, 국가의 경제, 군사, 종교를
관장하였다. 특히 Palais는 거대한 관청의 역할까지 맡아서 영토 내의
모든 재산을 수용하였으며, Greece Alphabet 체계는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되었다. 궁극적으로 Greece 문자 체계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문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Communication 위한 것은 아니었다.
즉 !!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 즉 !! 앞서 언급되어진 것처럼
기록을 위한 목적으로 발생된 것이다. 궁전은 점차로 방대한 영토와
많은 재산을 관리하게 되었고 나아가 하나의 지욕 전체의 자원을 관리하게 되었다.

원칙적으로 Palais이 생겨난 것은 거대한 창고로서
생산물을 저장하고 재분배하는 것이 가장 커다란 역할
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국가를 위해 일하던 관료 직을 수행한
사람들에게는 분배 되어야할 식량의 양이나 납부된 세금 액수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계에서 행정관의
기억만으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처리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방대한 정보가 형성됨으로써 영토 내의 국가 재산을 추적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필요에 의해 Data 화 하기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미케네 궁전" 주변에서 행정적인 용도로
사용되던 기존의 문자들을 차용하여 사용한 것이다.
선문자 B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 있는 문자 체계이었으나
문자를 이해하고 사용하였던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 하였고,
대략 미케네 왕국의 고위 관료들과 매일 장부에 뭔가를
기록해야 했던 행정관(필경사) 정도가 포함된다. 또한 시대
혹은 공간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글자라도 모양, 단어 구조, 뜻을
나타내는 단위까지 흡사하였기에 선문자 B가 제한된 사용자에 의해
활용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일례로 Egypt-Mesopotamia
상황도 같았으나 문자라는 것은 고대 사회에서 확실히 권력자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것이었으며, 시간 공간상으로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호간에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는 단정할 수가 없다.
초창기 문자는 Knossos, Mycenae, Tiryns, Pylos, Thebes 등...
당시의 행정 중심지에서 발견될 화병(도자기), 점토판에 새겨진 비문 등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것이 기원전 13 C 궁전의 화재 시 잘 구워졌기 때문에 잘 보존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고려할 대 점토판은 "파피루스 혹은
양피지", 나무 조각의 영구적 기록 재료에 기록하기 전에
한시적으로 기록하는 임시적인 방편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파피루스, 양피지, 장부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Greece 토양의 특성 상
이러한 재료가 오래 보존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파기하도록 만들어진 문서들만이 우연성을 갖고, 보존
된 것이다. (점토판 / 원래 불에 굽지 않은 상태이었다.) 또한
당시 Egypt-Mesopotamia-Mycenae 사이에 오간 상업적 문서는
이러한 것 밖에 남겨진 것이 없다. 선문자 B는 대부분 상업적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발견된 4,000여개의 점토판 중 단 !!
4 점만이 행정적인 용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해준다.
"미케네 궁전"을 휩쓸어 버린 대화재는 선문자 B라는 문자체계도
앗아가 버렸다. 오랜 시간 선문자 B가 유실된 경위를 "도리아"의 침입
으로 돌려 왔으나 사실은 인구의 대이동에 기인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원전 12 C 이 후부터 Greece Alphabet이 탄생하기 까지 시기의
고문서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암흑시대). 선문자 B는 설명 되어진
것처럼 경제 활동을 위해 만들어졌고, 또한 이것을 탄생시킨 사회 경제적 조직과
함께 소멸되었다. 즉 !! 재산의 목록의 기록과 보관을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더 이상 재산을 관리할 필요가 없었기에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사용자가 소수에
그쳤기에 권력을 상실한 순간 선문자 B는 소멸되었다. Roman Empire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Latin Alphabet 비문의 대략 연대는 기원전 7 C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Mycenae
Sabine Women
사실 이러한 시대 Roman Empire는 성립되지
않았지만 그 이전 Roman의 한 지역에서 살고 있던
소수 민족으로 보여 지는 족속들의 것으로서 Latin Alphabet
이전에 사용되었던 문자 체계(Etruria)를 확인할 수 있다.
Etruria는 기원전 8-6 C 말에 Italy 북부지역을 지배하였던 족속
이기도 하다. 그들의 문자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기원전 7 C 것이
현재 Persia 근교에서 실제 발견되고 있는데 "A"를 비롯하여 "B"가 좌,
우로 바뀌어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Latin Alphabet과 비슷한 문자로
확인되고 있으며, 현재 발견된 것으로 Etruria 보다 오래된 문자는
기원전 8-5 C 지중해 각지에 도시 국가를 건설하였던 Greece 문자로
가장 오래된 것은 South-Italy 등지에서 발견(8 C) 되었다. Greece Alphabet → Etruria → Latin Alphabet

Latin Alphabet에는 Etruria 문자를 참조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았을 발음의 문자가 있고, 이러한
경우... Etruria 문자가 없었다면 문자의 현실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결론적으로 Latin Alphabet의 뿌리는
Greece 문자에 비롯되어 있으며, Greece 문자에서 만들어진
Etruria 문자가 필연적으로 작용되어지는 것이다. 처음 Latin Alphabet가
만들어질 당시 초기 문자는 "20 자"였다고 한다. 이후 영토 확장으로
다양한 민족이 말(언어)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문자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하며, 1,000년 이상의 시공간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26"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토 확장 특히 활발한  Ireland 수도사들의
포교 활동에 영향을 받은 바 크고, 특별한 서체가 사용되었다. → Pope Gregory 1세(540-604)

Greece People 들은 문자를 발명한 대상을
신화 혹은 가설을 통해서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구전되어 내려온 것들 중에는 실제로 역사저인 근거를
갖춘 이야기도 공존하고 있다. 뭐...거의 확실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앞서 반복 설명되어진 것처럼 Phoenicia
문자로부터 Greece 문자가 파생되어졌다는 것이다. 역사의
아버지 Herodotos의 구전되어 오던 신화를 이용하여 이러한 가설들을
증명하고자 했던 흔적이 있었고 그러한 배경에는 Phoenicia +
Greece People 간에 왕의 아들 Phoenicia Kadmos(카드모스)가
일정부분 역할을 하였다는데 기인하여 설명할 수 있다. 더불어 Greece에
Alphabet이 도입된 시기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Greece People 들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9 C 이전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실도 실질적으로는 사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믿거나 말거나...현재로서 가장 정확한 흔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8 C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등에 새겨진 비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구나 "미케네 문명" 시대에서 볼 수 있듯이
쉽게 썩어 버릴 수 있는 재료에 새겨진 문서는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명백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고 Greece의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는데다가 미세한 차이를 고려하면
"문자"가 좀 더 일찍 만들어져 사용될 수 있었다는 가설을 전개
할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서 문자가 다양한 형태로 파생
될 수있었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기 때문이다. Greek Alphabet는 "페니키아 문자"가 수차례 변형된
결과로서 이러한 문자가 어떤 경로로 전달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한다.
Trojan Horse
Basilica Cistern
Bodrum(Halicarnassos)-Blogcu
즉 !! Greece 내부에서변형된 것인지... 혹은
Phoenicia 해변이나, Ionia 해변, Rhodes, Creta,
Thira Island 등에서 변형된 것이 아닌지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현재 이러한 사실에 반박할 아무런 사료
또한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나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Phoenicia에서 사용된 문자 체계가 Greece에서 사용되기
이전에 수많은 변형을 가져 왔다는 사실이고, Alphabet이
조금씩 알려지고, 확대되면서 다양하게 전개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초기 Greece & Phoenicia People
들은 상업적으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자들은 문자 도입
계기도 이러한 방식의 연장선에서 추정하였고, 지금으로서는 가장
믿을 만한 가설이라고 보여 진다. 다시 말해서 Phoenicia People 들이
간편하고 실용적이었던 Communication 도구로서 받았던 혜택을
목격한 Greece People 들이 차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
흔적에서는 상업적 목적의 비문이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업적 용도만으로는...

Phoenicia 문자에 있었던 변형이 설명되지 않는다. 먼저
문자의 명칭은 같지만 Phoenicia People들은 명칭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였다. 예컨대 aleph(알파) → Alpha는"소"를 뜻하고,
beth(베타) → Beta는 "집"을 듯하며, gimmed(감마) → Gamma는
"막대기"를 뜻하였다. 반면 Greece People 들은 그러한... 명칭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문자의 순서는 "페니키아 인들이 정해
놓은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형태 도한 커다란 변화가 없었지만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즉 !! 어떤 지역에서는 문자의 형태가
마치 뒤집어 쓴 것처럼 반대로 되었고, 어떤 지역에서는 90°로 틀어진 형태마저 보인다.

또한 단순화 되거나 복잡해진 지역도 있었다. 특히
Alpha가 그랬다. 가장 중요한 체계로 Alphabet에 "모음"이
도입되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셈족 어와 마찬가지로 Phoenicia
에서는 "자음"이 의미의 매개 역할을 하며 "어근"을 이루어
같은 어족의 단어를 만들게 됨으로써 "모음"은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Greece People 들은 "인도-유럽 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모음"은 자음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모음"까지 기록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하여 Greece People들은 Phoenicia 문자 중에서
"자음" 혹은 "반 자음"이기도한 문자 다섯 개를 지정하여 "모음"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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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 C에는 글을 알고 있는 직업적인
시인과 음악가가 존재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음표가
발명된 시기도 기원전 6 C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기원전 500년경부터는 초급 교육이 실시되었다. 또한
그 무렵 Athens에서 화끈한 Ostrakismos(도편 추방)가 시행된
것을 보면 시민들에게 문자가 널리 퍼져 있음을 확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문자를 아는 인구는 기원전 5 C중에 꾸준히 증가
하였으며 기원전 4 C 이 후에는 대다수가 문맹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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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ph(a), he(e), Yod(i), ayin(o), waw(u)
이러한 문자들은 Greece 지방 방언에서도 같은
소리를 내게 되었다. 특이할 점은 이러한 과정이 소수의
사람 혹은 고대인들이 추축하였던 것처럼 위에서도 잠시
언급 되었으나 단 한사람에 의해 정리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모음" 도입 이후 다른 변화들은 비교적 작은 것들이다. Phoenicia
문자에는"치 찰 음"이 4 개 있었는데 Greece에 유입되고 부터는
"치 찰 음"을 줄이고, 원래 있던 "s"와 "zd"만을 사용하였다. 또한 "유성 자음"
이기도 한 소, ph, kh, ps, x의 발음을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추가
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들은 동시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각 지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Greece에 유입된 "페니키아 문자"는
고정된 시대를 거쳐 지역별로 변환 되다가 기원전 4 C에 이르러 비로써 통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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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or ...Egypt
Jericho Skull
Cnossos Palais
기원전 6 C / 20자
ABCDEFHIKLMNOPQRSTVX → 초기

기원전 3 C / 21자
ABCDEFGHIKLMNOPQRSTVX → G 추가

기원전 1 C / 23자
ABCDEFGHIKLMNOPQRSTVXYZ → Y, Z 추가

기원후 10 C / 26자
ABCDEFGHIJKLMNOPQRSTUVXWYZ → J, U, W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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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ing Point
Sinai Peninsula-Palestine에는 거대한 문명은
없었지만 원(原)시나이 문자(원 가나안 문자)라고 불리는
문자로 쓰인 비문이 "광산의 터" 등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이 땅에는 이미 문자가
사용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gypt Pharaoh가 통치하는 왕국이
2,000년 이상이나 계속되고 있었고, 그곳에는 Hieroglyph 등이
있었다. Creta Island에도 문명이 있었고, 그곳에서도 독특한 형태의 문자가 발견되었다.

Phoenicia 본토(지중해 동쪽 해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그 외 North-Africa, Turkey,
Greece, Italy, France 등에서 비문이 다수의 발견
되고 있는데 Greece Alphabet, Phoenicia Alphabet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문자의 형태가 일부 다르고,
현재 스스로 다른 민족과 동화되어 사라졌다는 Phoenicia
Alphabet보다 오래된 문자에서 "모음"을 나타내주는
기호는 없다고 한다. 11세기 지중해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Phoenicia인들의 "문자 탄생"은 11세기 이전으로
추정되고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Creta Island 섬의
상형문자, Middle East-Mesopotamia의 설형문자, Sinai
Peninsula의 원(原)시나이 문자, Egypt Hieroglyph(히에로글리프)를
통해서도 유추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Phoenicia 문자의
뿌리로 유력한 것은 원(原)시나이 문자이며, 문자의 유사성에 근거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원(原)시나이 문자의 뿌리가 되는
문자는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 까 !! 증거로 Egypt
Wadi el-Hol(와디 엔-홀 )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 비문에
쓰인 문자는 Sinai 문자와 유사한 것이 발견되었고, 이러한
문자를 당시 Sinai Peninsula에  살았던 사람들의 언어
(셈-어)로 읽게 되면 Phoenicia Alphabet로 이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Alphabet은 Hieroglyph의 기호를 참고하고 있으며
Egypt People 이 외의 외국인이 자신들의 언어에 맞춰 만들었다는 것이다.

Wadi el-Hol = Egypt  Luxor
북서쪽 약 30 km 지점, 석회 암질의 사막으로
비가 오면 물이 흐르는 강이었다. (이집트 왕국의 바깥
가장자리 !!) 이곳에 Asia People의 부대가 머물고 있었다고 함 !!

Latin Alphabet에는 Etruria 문자를 참조하지 않으면 생기지
않았을 발음의 문자가 있고, 이러한 경우 Etruria 문자가 없었다면
문자의 현실화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데 결론적으로 Latin 문자의
뿌리는 Greece 문자에 비롯되어졌으며, Greece 문자에서 만들어진
Etruria 문자가 필연적으로 작용되어지는 것이다. 처음 Latin 문자가
만들어질 당시 초기 문자는 "20 자"였다고 한다. 이후 영토 확장으로 다양한
족속이 말(언어)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문자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하며,
1,000년 이상의 시공간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현재의 "26"자가 만들어진 것이다.

Old Greece Alphabet의 특성으로 극명한
것은 첫째 줄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쓰면
다음 줄은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방식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방식을 말할 때 "소가 논을 가는 방식"
이라고 한다. Phoenicia Alphabet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고, 쓰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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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di el-Hol
Latin People
01. Languages Cyrillic Alphabet
동-유럽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체계
구-소련, 소비에트 연방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던
국가에서 혹은 포함되는 족속(Bulgaria, Serbia)에서 널리
사용되던 문자로 Russia 정교회의 책에 쓰여, 이 지역의
필수적인 문자체계라고 할 수 있다. → 왼쪽에서 오른 쪽 방향
 
02. Languages Arabic Alphabet
Islam 각국에서 사용되는 문자 체계
서-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Islam의 "코란"에 사용되어 있기에 Muslim들에게는
특별한 종교적 의미 있는 글자라고 할 수 있으며,
특징은 모음이 없고, 자음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

03. Languages Latin Alphabet
United States of America, Europe, Africa
등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 체계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문자의 수가 다르게 나타난다. 세계
70개국 이상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A"에는 "a" 소문자가 뒤따르고, 각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A→Z 까지 문자 26자가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
 
04. Languages Chinese Character & Hangeul
한자(漢字)와 한글(훈민정음) East-
Asia에서 사용되는 한자(漢字)와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 한자는 중국 및 역사적으로
China의 영향력이 강했던 대한민국 혹은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문자의 수는 수만 가지가
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이 주체적으로
사용되며 "일본"에서는 한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일본의 문자 "Ghana"가 사용되고 있다. →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
Cartouche

Temple of Arte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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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reine de Sava / Paul mauriat

by Beercook | 2009/07/04 06:56 | History ...Packag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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