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e of Israel ↔ Jerusalem... Jew People

Tallit
Baklava Turkish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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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먼저 시작하기 전에 종교(宗敎)적
관점에서 "Ancient Near East" 의 사회, 문화적인
부분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지하지만
전문성을 갖고 올리는 글은 절대 아님... 단지 !! 개인적으로
필요에 의해 축적되는 Data 의 일부라는 점을 인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보이는 곳까지
만이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봐 주셔도 무방합니다. 모쪼록 즐거운 시간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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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opotamia
Ten Commandments
Pastoral Nomadism
실질적으로 Ancient Near East 에서는 "종족"이나 "언어" 보다
종교(宗敎) 문제의 경우... 복잡하고 혼란을 가중 시킨다.
"고대 신"들 중의 일부는 사멸하고 잊어졌지만 많은 신들은
여전히 기이하고, 변화된 형태로 살아 있었으며, "Hellenism-
Roman" 통치라는 엄청난 영향에 이어서 "정복과 이주"
대한 오랜 경험은 새롭고 혼합적인 형태의 신앙과 숭배 사상을
가져다주었는데 심지어 일부 동방의 숭배 사상은 "Roman Empire" 의
내부에 까지 추종자를 확보하기에 이르며, 과거...현재를 통 털어
더욱 "경계"를 넓혀가는 문명권의 확장과 더불어  발전적으로 몇 가지
종교의 변용과 궤를 같이 하게 되었다. 인류 최초의 종교는 소규모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연 및 장소" 의 종교이었다는 점에 주목해보자 !!

Old Ancient Near East 의 족속들에게 "신"이라는
존재는 전적으로 "가족과 부족" 그리고 "마을과 도시"의
"신"들을 의미하였다. 종족들 간에 유대관계가 확장되면서...
보편적으로 신들에 대한 인식도 단일 장소에서 국한 되지않고
광범위한 지역 경계를 넘어서 숭배되었으며, 또한 상식적인
통합과정을 거치면서 일정한 개념을 정립시키고, "위계"에 의해
표현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 덕분에 서로 다른 종족들은
자신의 토착 신앙과 숭배 형식을 지키는 동시에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보편적인 지고함을 지닌
위대한 "신"들을 섬기는 "다신 신앙" 에서 출발하여 오직 하나∼
절대자라는 무한한 존재를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인류의 "관념"에 의한 도약의 발판이 되어 주었다.
Monotheism(유일신) 은 Old Israel의 선지자들에 의해 처음 설파되었고,
그 후... 기원전 7 C 경에는 Iran(Persia) 의 예언자 "Zoroaster" 가 유일신을 주장한다.
Christianity-Islam 역시 !! "Monotheism(유일신)" 에 대한 보편적인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 그러한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인류의 의무라고 지적하였다.
Greek Orthodox Church
Armenia Church
Coptic Cloth
새로운 사상과 교리의 전파력...
Ancient Near East 내부의 여러 종족
사이의 교류 확대 그리고 Great Empire
(Roman-Byzantium-Persia, Sasan) 의 후원 등
여러 요인이 작동되며, 마침내 Judaism-
Christianity-Zoroastrianism 등이 피지배 종족
들에게 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Iran, Iraq, People
일부는 Zoroastrianism(선신 개념) 그리고 이단
종파인 "마니교, 마즈다 교..."를 고수하였으며 Iraq의
나머지 지역과 그 서쪽에 있던 Byzantium Empire 전역에는
여러 형태의 Christianity가 난립되었지만 비교적 한 가지를
선택하여 신봉하게 되었다. 구분하여보면 대체로... Egypt Copt,
Syria Jacobite Church, Iraq Nestorius Church, Armenia Church,
Greek Orthodox Church(Anatolia, Balkans) 등에 집중된 것 같다.
그 밖에도 수많은 Jews 공동체와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
Judaism이 살아남아 불꽃을 피우고 있었다.특징적으로 이러한
유일신 신앙들은 비슷한 교리를 갖고 있었으며, Judaism의
경우 유일신인 하나님이 자기 백성인 Jews 들에게 율법을 전하고
지키도록 명령하였고, 현세와 저승에서 그들은 심판 한다고 설파하였다.

Zoroastrianism 역시 최고의 신 Ahura-
Mazda(아후라 마즈다)
를 조물주이며 광명과
진리의 하나님으로 믿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이세상의
문명은 하나님과 사악한 어둠의 세력이 벌이는
싸움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였는데 인간 역시 이러한
투쟁의 일부인 만큼 행동과 믿음을 통해 "선과 광명"이 승리
하는데 헌신할 의무가 있으며, 심판의 날에 심판을 받는다고 주장
하였다. "조로아스터교"는 각 개인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종교이었다. Christianity 또한 여러 면에서 Judaism-Zoroastrianism와
유사한 신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은 Nuance가 다른 종교(宗敎)로
볼 수 있다. 중심교리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三位一體)
신앙이다. 여기서 "성자"는 Christianity의 주체로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Jesus이다. Christianity는
윤리적 요소도 컸으나 그 열망의 핵심은 Jesus에 대한 신앙을 통해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악과 고통으로 부터 구원이 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지향하는 바는 서로 달랐지만 Judaism-
Zoroastrianism-Christianity는 공통의 기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 "초월성을 지닌 종교"이었고
현세 너머에 윤리적 행동이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더 높은 세상 "신의 영역"이 있다고 믿었다. 또한
"희생과 기도" 그리고 성사를 통해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덧없는 현세로부터 영원불멸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이러한 세 종교(宗敎)는 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동시에 지금까지 지배하였다는 사실을 믿는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다. 이러한 정체성과 공동의 생활양식은 단순히 정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Christianity Church에서 확인된 것과 같이 종교적 믿음은
종교 단체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교회"는 영적인 차원에서 행정적인
차원에서도 위계를 이루었으며, 교리 혹은 조직상의 문제에 대한 권위는 교회의
수장에게 있었다. 교회의 수장은 영역별로 조직된 위계를 통해 신자들과
소통되었고, 최고의 권위는"Pope & Archbishop"에게 있었다. 종교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포괄적인 관념을
제공하는 동시에 예배, 정의, 교육, 지방 행정 등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제도로서 Jews 공동체 역시 Christianity의 지방 교회구와
비슷하게 조직되었지만 엄밀하게 따져 보면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그것은
"법과 교육 자선"이라는 행정체계는 물론이고 믿음과 예배 의식을 결합시켰다. 그러나...
Jewish Rabbi
Jewish Wedding
Christianity와 같은 위계적 성직자 조직을
만들지는 않았고, 그 대신 비공식적인 제휴 관계와
현자(랍비)들에 대한 존경에 의해 서로 연결되었다. 조직화 된
Christianity Church, 분화된... Judaism 공동체는 이 후
Islam 종교 단체조직의 선례가 되었는데  7 C Islam의 출현과
승리는 어떤 면에서 Christianity의 발생과 전파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Islam의 출현 자체가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선행자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Christianity, Islam 문명 모두가
접촉과 상호 작용에 의해 유래되어 Persia-Greece 라고 하는
체계적인 전통을 가진 Old Middle East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서 설명되었지만 자신들의 종교적
핵심으로 윤리적인 일신 사상을 확립한 최초의 인물들은 Jews 들이었다.
그리고 원초적인 종족 종교에서 우주적이고 "윤리적인 일신교"로
그들의 신앙체계를 진전시킨 내용은 Hebrew 성서의 후속 서에 나타나고 있다.

유일신에 대한 진실의 인식에서 그들의 유일성과
비범한 사실에 직면한 고대 유대인들은 그들이 신을
선택하였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신이 그들을
선택하였다는 보다 "겸허한 신앙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특권
보다는 "의무가 더 많이 부과되는 선택"이었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런 짐이 될 수도 있었다. 참고적으로
"인류 신앙 사"에서  Judaism & Zoroastrianism의 접촉은 기원전
6 C에 이루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 세계로
퍼져 갔다. 기원전 586년 Babylon 왕의 정복 전쟁의 과정에서 Jerusalem을
점령하고 "유다 왕국"과 사원을 멸망시켰으며 당시 !! 관습에 따라
피 정복 민을 포로로 잡아 Babylonia로 압송하였고 몇 십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Persia의 또 다른 정복자 Cyrus에게 정복당하기도 한다. 그가 바로
당시... Syria∼ 그 너머 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던 새로운 Persia의 창건자이었다.

정복자와 광대한 지역에 살아가며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 피 정복 민 유대인이 외관과 신앙에서
어떤 기본적인 동질성을 의식하였는지는 모르지만Cyrus =
Kyros(고레스)는 Babylonia에 포로로 잡혀 있던 유대인들이
Israel 땅으로 귀환할 수 있도록 배려하게 된다. 나아가
제국의 예산으로 Israel 성전을 재건축 하도록 하며, 이후 Hebrew
성서에는 Cyrus에게 비 유대인 통치자는 물론이고 유대인
통치자에게도 좀처럼 부여하지 않는 각별한 존경을 표시하고 있다.
Cyrus는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보여 주었고, 그 대가로 유대인들은...
Cyrus에게 충성을 다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국과
타국에서 Roman 지배를 받게 된 후 수세기 동안 Roman의 적이기도 한
Persia에 동정적이었으며, 심지어 그들과 내통한다는 이유로 의심을
받기 까지 하였고, 유대인들과 Persia People 사이의 상호 결실의 관계는
Cyrus와 그의 후계자 시대로 거슬러 갈수록 명확해짐을 알 수 있다.
Persia의 지배 영역이 서쪽의 Asia Minor를 가로질러 Aegean Sea 방향으로
확장되면서 Greece People 들과 접촉하거나 충돌하게 되었는데 당시 !!
번성하던 Greece 문명과 Persia의 사이에 통신망이 구축되었던 시기 Greece의
사도는 종교적이라기보다는 철학적... 과학적이었는데 Greece 철학자,
과학자가 이룩해 놓은 통찰력은 연이어 일어난 중동의 종교적 문명, 나아가...
세계 문명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Greece 상인들은 그 고용인으로부터
일찍부터 Middle East 의 여러 지역을 조사한 후 그 지역의 국가들에 의해
정보를 주었고, 이것이 Greece 철학자 과학자들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게 되었다.

또한 Persia의 확장은 새로운 기회를 가져왔으며,
손쉬운 여행과 통신, 언어의 지식, Persia(Iran)정부가
여러 분야에서 Greece 기술을 채택한 것이 하나의 예이다.
새로운 시대는 Macedonia의 통치 Greece 문화의 영향을 Iran을
지나서 India 변경지대와 남쪽으로는 Syria & Egypt 까지 확산
되기에 이른다. Macedonia Alexandros 사후 그의 정복지는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Iran, Syria, Egypt에 각각 근거를 둔 세 왕국으로 분열
되며 Greece People 들은 Alexander 정복 이전부터 Persia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러한 시기부터 신비에 싸여
있던 Mesopotamia, Syria & Egypt 땅에 대해 친숙해졌으며, 그곳에 정치적
패권을 확립하여 궁극적으로 Roman의 정치적, 통치에 대한 길을 마련
(문화적 우월성)하게 된다. 기원전 64년 Roman Empire에 의해 Syria가 병합
되고, 이어서 "Judah" 마저 멸망에 이르게 한다. 기원전 31년에는 Battle of Actium
에서 Antonius & Cleopatra의 패전 이 후 Greece & Egypt 역시 Roman의 지배에 종속되게 되었다.
Jesus Christ
Winged Bull from Mesopotamia
Iran Plateau에서는 Parthia Dynasty가
들어서며 찬란한 Hellenism 문명을 꽃피우게 되었는데
Sasan Dynasty → Parthia Dynasty를 붕괴시키고,
판도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며, 대략 이 시기에 Zoroastrianism
신앙은 Persia(Iran)의 국교로서 통치권이나 사회, 정부
기구의 하나의 부분이 되었으며, 국가 종교 사에 최초의 훌륭한
예로서 존재하게 되었는데 국가 정치세력과의 연계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국가 존립에 의해서 고통도 함께 하였다.
따라서 Arab의 정복활동으로 Persia Empire 와해된 후 Zoroastrianism
신앙은 심지어 Islam 시대에 Iran의 정치적, 문화적, 생활이 부활
되었을 때 다소의 부흥과 역할에도 불구하고 기나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Persia(Iran)에서 Islam 진출에 대항하여 종교적 영향을 시도 한 것은
권위를 행사하는 것에 익숙해 있던 정통 Zoroastrianism 신앙의 성직자들이
아니라 저항과 탄압에 주로 관련되어 있던 이단자들이었다고 한다. → 마즈다 교, 마니교, 미트라교

어찌되었든지 제국 단위의 고유한 전통성을 지닌 최초의
종교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Zoroastrianism 신앙을 말함이고,
고대 문명세계의 종교들이 초기에는 윤리적이었다가 점차로 도시화,
정치화 되었고, 그 과정에서 종교적 의식을 유지시켜 주던 정치
체제를 따라 소멸해 버렸다는 측면에서 Zoroaster 신앙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법칙에서 예외가 되는 종교가 있는데 정치적이고,
영토적인 근거가 소멸된 후에도 살아남아 급격한 변신 과정을 통해서
살아남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Greece-Roman에 대한 정치적 저항에서
유대인들은 실패하기도 하지만 잠시 동안 "Judah 왕국"의 독립을 회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강력한 Roman Empire에 대항하는 그들은 열세일 수밖에 없었고,
일부는 Persia의 선동과 도움으로 반란에 반란을 거듭하였지만 결국 진압되어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왕들과 고위 사제들은 Roman Empire의 꼭두각시에
불과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총독에 의해 통치되는 시대를 맞이한다. 이러한
시기 유대인들은 유배되거나 역사적 명칭마저도 말살되었는데 파괴된 유대 성전 터
위에는 치욕스러운 Temple of Jupiter(유피테르 신전)가 세워졌다."Judah &
Samaria"
같은 명칭은 사라지고, 국가 명은 오랫동안 잊었던 Palestine으로 바뀌었다.

Roman-Jews-Greece People은 서로 유사하고
고대의 다른 민족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러한 특징들이 조합되어 연속되는 문명의 형성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된다. Ancient Near East(고대 근동 = 중동)에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고, 집단을 규정하며,
외부 인을 거부하는 것은 인간 집단의 보편적인 관습이었다.
이러한 관습의 근원적인 필요성은 인간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인간이 아니 대부분의 "동물 세계"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이며 내부자와 외부 자 사이의 구분은 항상 혈통,
친족이라는 종족성에 의해 결정되었다. Mediterranean Sea의 가장
뚜렷한 고대 족속이기도 한 Judea-Greece People들은 자신과 같은 부류가
아닌 족속을 "야만인"으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을 이교도로 간주하는
타자에 대한 고전적 정의를 남겨 놓게 된다. 이러한 용어에 의해 표현되는
경계는 분명하였지만 경계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점에서 경계는
보다 원초적이고 출생과 혈통에 근거한 보다 보편적인 차이에 대한 정의와는
다른 것이며 이러한 경계는 한편으로는 Greece People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Jews의 종교와 법률을 받아들임으로써 서로 섞이고, 때로는 제거되기도 하였다.

집단 자체가 새로운 구성원을 찾아 나서지는 않았지만
Jew-Greece People 양 집단 모두가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Christianity 시대가 시작될 때 까지 Greece Tue
되었던 "야만인"과  Jewish Tue 되었던 이교도들은 중동의 많은
도시에서 볼 수 있었던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던 것이다.
Roman은 포용의 원칙으로"공동의 제국 시민권"을 점차 발전시켜
시민을 정치의 구성원으로 보고 정부의 구성과 운영에 참가할
권리를 가진 자로 보았다. 그러나 Greece의 도시 구성원은 토착시민과
그 자손들에 한정되었고, 외국인이 갈망하는 최선의 것은 외국인
거주 신분이었다. Roman의 시민권도 근본적으로 같은 개념이지만 Roman
시민권의 권리와 의무는 단계적으로 제국 내 모든 지역으로 확대 되었다.
Greece 문화의 접근 가능성, Judea의 종교, Roman의 정치 모두가 전도
종교인 Christianity의 발생과 확산을 위한 길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Christianity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신의 마지막 계시를 소유
하였다고 믿었고, 그 계시를 전 인류에 전달하는 것은 신성한 의무로 여겼다.
수 세기 후 보편적인 종교, Islam이 발생하여 내용, 방법은 달랐지만 추종자들에게
Christianity와 비슷한 확신과 임무를 불어 넣게 된다. 두 종교는 똑같은 확신에
의해 유지되고 똑같은 야심을 가지고 돌격함으로써 더구나 한 지역에서
나란히 살아갔기 때문에 이들은 격돌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그들이 맞이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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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mme Fatale ...Caravaggio Judith And Holofernes
Kingdom of Judah
Israel Woman
Judaism, Islam + Christianity + Greece Orthodox Church, Egypt Copt
Jesus - Paul - Albert Einstein - Karl Marx - Sigmund Freud - Baruch Spin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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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ael ... Israel ... Israel
그럭저럭 접근해보도록 하자 !! 가늘고 긴 좁은 땅덩어리,
바다와 호수, 강, 사막과 광야, 흑백간의 대결구도로 대강 설정
되는 곳이다. 가는 곳마다"Bible(성경, 聖經)" 에서나 확인 가능한 유적지가
수 천 년의 역사와 함께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서 오래전부터
존재하여 왔다는 사실과 영토와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된 전쟁의
결과에 의해 확정되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Israel People들과∼
그들을 불법적 무단 점령군 이라고 주장하는 Palestine 사람들의 항변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복자의 오만함과 피정복자의 서러움이 팽배해 있는 곳이다.
또한 그러한 사실은 현장에서 즉시 !!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Palestine & Israel을
갈라놓는 분리장벽이나 끝도 없는 검문 검객, 국제 정치와 영토, 인권 문제와
유대인 그리고 Middle East에서의 Arab People들의 생활 그리고 성서적 이야기
등이 끝없이 이어지며, 동시에 Leisure & Vacation이 충족되는 지구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색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Jerusalem의 역사는
Israel의 역사와 함께 공존하였고, Israel의 역사 또한 Jerusalem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주목 받을 만하다. 지구촌에서 = 전체 인구의0.5 %
안 되는 점유율을 보이는 것이 Jews = Yehudi !! 아주 오래전 그들은 Babylon People,
Greece People들과 함께 살면서 Roman Empire의 운명을 지켜보았고, 한때는
Islam 문명과 함께 번영하였으며, 암흑시대로 알려진"중세"에서도 살아남아 근대에
이르러 새로운 지성의 정상에 위치하게 된 민족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주목할 것은 "유대인"
들과 같은 시대에 존속되었던 위대했던 민족들은 거의 사라지고, 현재는 잔재만 남아
있으며, 그나마China People, Hindu People, Egypt People들만이 유대인과
함께 현재에도 공존하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 유대인들은 유목민 집단에 불과하였고,
Philistine, Babylon, Hittite, Assyria, Phoenicia, Egypt(Hyksos), Persia와 같은 강대국
틈새에 끼인 "깍두기"와 같은 신세와 마찬가지이었으며 이들 국가가 서로 맞부딪치고
Game of Chicken 상황에 벗어나지 못하였던 1,700년간의 역사 속에서 유대인 그들은 살아남았다.
Jews In Jerusalem 1895
Judaism Quilt
Talmud Study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시기 Jews
들은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간단히 조망하면 유랑, 노예 전쟁, 학살, 집단 이주의 세월을 겪고,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삶 자체에서 특별한 Aura가 느껴질 정도 이다. Greece 패권의 시대
자잘한 국가들뿐만이 아니고 Roman Empire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종교
법률, 정부, 군대 모든 분야에서 Greece Type으로 전환 되었던 시기가 있었고,
세계사속에서 Greece Civilization이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할 때 Jew 들의 존재는
그저 불가사의(不可思議) 하게만 여겨진다. 또한 Roman Empire의 경우 거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었던 "군 체계"가 붕괴되면서 문화도 소멸되었는데 애초부터
Greece → Roman의 지배를 받던 크고, 작은 국가들 역시 !! 사라지게 되면서 새로운
국가가 무력으로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Jews들은 그 자리에서 계속 생존하였으며, 변신을 시도하기 까지 한다.Diaspora
뜻은 "분산"이라는 의미로 Palestine 이외에 이교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집단을 의미
하고, 배경은 기원전 6 C에 Babylon에서 의해서 Jerusalem에서 추방될 때부터
19 C 유럽의 "Ghetto"에서 해방될 때까지의 기간에 유대인들이 작은 집단으로 분산되어 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중 유대인들은 광범위한 지역으로 흩어졌으며 쉽게 동화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유지하며, 전혀 다른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 나름대로 발전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Diaspora → Tigris-Euphrates River, Egypt, Babylon, Palestine, Tel Aviv

Jews 들은 당시 !! Talmud라는 종교 규약을 만들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며, Talmud는 유대인들에게 응집력과 모든∼
사고의 귀착점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시대를 Talmud 시대라고
말하고 있고, Talmud는 거의 1,500년간 유대인들을 지배하여 왔다.
강제 이주가 정복자에 의해 자행되던 때 유대인들의 가장 커다란
변화 중에 하나는 "예언자"들에 의해 "유랑 종교"가 발전되고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설명하자면 정복당한 Judah 왕국의 유대인들에게 예언자들은
제의의식과 예배에 관한 것을 규정해 주었는데 인간성, 정의, 도덕성이
그 어떤 의식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절대자(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 자체를 원치 않으며, 인간이
희생물을 바치지 않는다고 해도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진정한 죄는 타락과 정의에 역행하는 행위로서 희생과 의식의 신앙이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예언자들의 다소 일방적인 주장들은 결과적으로
제사장의 영향력을 감소 시켰고, 결국은 Martin Luther의 종교적 관념으로
Christianity 사제의 역할이 "개신교의 목사"의 역할로 바뀌어졌듯이 유대교
제사장의 역할이 의식을 행하는 사람에서 유대교를 가르치는 "Rabbi(랍비)"의 것이
되었다. 때문에 Jews들은 모든 인류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예언자의
가르침으로 유대교의 물리적 계율은 유대인에게만 적용되고, 정신적, 도덕적 유대교
율법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는 관념을 이 때 부터 갖게 되었다. 몇몇 유대인
가족(씨족)들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유대교는 Moses에 의하여 Israel의 모든
족속에게 확대되었고, 국가를 형성하며, 예언자들에 의해서 모든 인류의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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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mud...
Jerusalem Streets
Turning Point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고대 초기 Orient History
기후와 지리적 환경이 인간의 역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하며, 인간 생활에 중요한 변수도 작동되었다.
보편적으로 Palestine의 기후는 당시"아열대성"으로 겨울에는
비가오고, 여름에는 건조한 지대이었다. 겨울에는 다시
기간에 따라 비가 다르게 내린다. 10월-이른 비가 약간 내리고,
1월-무기로 접어들어, 많은 비가 내리며, 3월-늦은 비로 마지막 비가 내린다.
여름의 건조기에는 석회질로 이뤄진 토지는 거의 전부 바싹 마르고,
다만 영원히 물이 흐르는 샘과 시내만이 여전히 물이 흐른다.
이처럼 잘 내리지도 않는 비가 제때에 내리지 않으면 그것으로 토지가
황폐화 되었고, 땅이 젖는 시기와 마르는 차이에 의해 인간 생활에 심대한
변화의 바람이 몰아쳐 왔다. 또한 가을이 되어 새해가 되면 땅을 갈아
"씨"를 뿌리는데 봄에는 추수하고 특히 Grape 농사와 Fruits 농사의 추수는
대체로 늦은 봄에 이루어진 편이다. 건조 기, 강수 기가 교체됨으로써 농경지의
경계선이 언제나 유동적이었으며, 그로 말미암아 유동적인 농경지는
여름에는 초원이 되었고,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농경지로 바뀌는 것이다.

겨울에는 사막에도 풀이 자라서 초원이 되므로
채소도 자라고, 유목민들과 그 가축들에게 식물을 제공
하였다. 그러다가 늦은 비가 그치면 사막의 초원에 풀이 사라지고
유목민(遊牧民)들은 목초지를 바꿔야 하였다. 곧 !! 그들은 가축
떼를 몰고, 농경지로 들어와 여름을 보낸다. 이러한 곳에서는 여름에도
추수한 들판에서 약간의 먹이를 구할 수 있었는데 언제나
몇 개의 샘과 시내에는 물이 흐른다. 그러다가 대지가 촉촉해지는
습기 찬 계절이 시작되고, 사막에서도 다시 풀이 돋을 무렵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역사적으로도 "매년 지속되는 과정" 결과이면서 유산과 같은 것이다.
그 이유는 유목민들이 해마다 찾아가는 농경지를 더 이상 떠나지 않고,
거기서 멈춰 영구히 정착하려는 노력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러 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의 성공 여부는 농경지의 원주민들과 유목민 사이에
세력 판도로서 언제나 새롭게 형성되었다. 판도의 변화와 유동적으로 맞물려
농경지의 족속들이 허약해지면 정치적으로 몰락한 시기 유목민(遊牧民)이 초원으로부터
몰려와 원주민들을 약화시키는 일이 쉽게 발생되었고, 많은 가능성을 내포한
상태이었다는 사실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지리적 환경과 기후적인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곳에서 Israel 민족도 정착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반-유목민(遊牧民)의
초원에서 농경지로 몰려들어 약화시킨다는 모든 민족의 이동 물결과도 다를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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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ael Army
Snow In Jerusalem
Children...
기원전 6 C Babylonia에 유폐되었던 유대인들은
이처럼 종교를 혁신하여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고,
과거에는 법으로서 성전이 Jerusalem에 국한 되어 있었지만
엄격한 의식과 절차에 따라 "희생제의"를 치러야 했던 것을
그 가치를 격하시킴으로써 예언자들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종교를 시공을 초원하여 믿도록 하였다. 또한 Jerusalem 땅에서...
유대인들은 인류의 소유물이 된 두 가지 관념을 창조하게 되었는데
그 하나는 희생 제사를 드리던 성전 대신에 종교 모임을 가질 수 있는
Synagogue(회당)를 건설하고, 또 다른 하나는 의식으로 일관되었던 종교적
행사 대신 "기도"하도록 한 것이다. 유대교 회당은 Christianity-Church,
Islam-Mosque의 전신이 되었으며 기도는 유일신이기도한 절대자에게 헌신
하겠다는 보편적인 행위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므로 사원과 기도를 통해
유대인들은 더 이상 특정 사제단, 성전 지방에 예속되지 않고, 어느 곳에든지
중개자 없이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할 수 동기부여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유폐
되거나 추방당해도 유대인들은 생명력을 지닐 수 있게 된 것이며, 실질적으로
Babylonia 유폐시절 유대인들은 "부역"만 한 것이 아니다. 대체로 Babylonia의
개화된 왕들은 관용적이었고, 대부분은 그곳에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다. 유대인들은
Babylonia에서 무역(교역) 로이었던 모든 곳에 흩어져 상인이 되었고 국제 무역(교역, 금융)인이 되었다.

Babylonia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저작물들을 접하고,
경제적인 "부"와 함께 내적인 성장을 이룬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망명 중에 번영을 이루었는데 세련되어졌고, 다소
인구의 증가도 있었다. 이쯤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부각되는
첫 번째 시도가 진행되는데 하나의 유대인을 다른 유대인이 유대인
기금으로 Palestine으로 귀환시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움직임을 "Political Zionism(시온주의 = 유대 민족주의)"이라고
하는데, 훗날 건국 이전의 움직임과 관통되어 있는 모습이다. 즉 !!
부유하였던 유대인들이 비교적 성공하지 못한 유대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여 Jerusalem으로 돌아가게끔 함으로써, 대규모의 이주가 있은 후에도
유대인들이 지속적으로 본향으로 귀환하게 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해서 Jerusalem은 활기가 넘쳤고, 인구는 증가추세를 보이면서...
어찌되었든지 일시적으로 나마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핵심적으로
"상업, 농업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과 함께 Persia 패권의 시대가 열리며,
짓게 되었고, 조공이 선결적으로 처리되었으나 유대인들은 한마디의 불평불만도 없었다.
Bedouin...
Tel Aviv In Beach
6 C 전반기- 7 C Arabia Peninsula 소규모의
고립된 "건조지대(사막)"를 중심으로 좀처럼 인류가
쉽게 살아갈 수 없는 지역에서 유목을 하였던 토착민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가 창시 되었다. 그것은 위대한
Islam으로 Muhammad에 의해 비슷하지만 다른 두 길을
걷게 되는 역사가 이제부터 펼쳐진다. Islam은 즉각 반응하는
행동적인 신앙 양식을 갖고 있었으며, Islam이라는 어휘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자기 자신을 절대자 앞에 내던지고, 그 뜻에 완전히
맡긴다는 Arabia Alphabet에서 비롯되었다. 하루 다섯 차례
시간을 정해 온몸을 던져 머리를 땅에 조아리는 예배 의식에서 그러한
의미가 잘 드러난다. 절대 "유일신"에 대한 이러한 복종의 신앙체계는
기도를 마음속으로만 드리는 신앙이 아니라 동작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표현
하는 행동적인 것이어야만 하였다. 따라서 Islam은 출발부터 보다 일상
생활과 밀착된 종교이었고, 일찍부터 사회성이 강한 역동성 있는 종교이었다.

어쩌면 태생적으로 이미 !! 구축되어 있던 같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기도 한 Judaism / Christianity
대한 방어적인 위치에서 이와 같은 행동 양식이 필요했는지도
모르며, 그렇기에 Islam은 현세에 대한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자세를
견지하게 된다. 현실세계가 죄악과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면 이것을
피해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맞대응해서 Allah의 뜻에 따르는 악의
없는 세계로 변혁해야 한다고 강조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적인
목표가 필연적으로 정치권력과도 쉽게 밀착될 수밖에 없었고, 창시 이 후...
강한 행동력을 지니고, Arabia Peninsula를 석권하며, 지배력을 확립한
Khalfah 들이 제정일치, 조직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도... 우수한 군사력으로
Middle East 지역을 넘어 Asia 일부 지역에 이르기 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도...
행동하는 신앙체계가 그 동력으로 작동하였던 것이다. Arab People들을
"핵"으로 거대한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Islam Empire의 형태를 갖춰갔다. 끊임없는
증오심으로 Christianity를 미워했던 Islam 지배 하에서도 유대인들은 생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성, 과학, 문학에서 그들의 탁월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유대인들은 정치가, 철학자,
의사, 과학자, 무역인(교역, 금융) "다국적 자본주의자"
성장하였는데 그들은 일상적으로 5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의 국제적인 안목을 지니고 되었다고 한다. Chameleon
처럼 변신에 능했다는 유대인들은 그 후 700년 이라는 시간을 흘려
보내면서 Islam 세계가 점차로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할 즈음 동시에
쇠퇴하게 되었고 바로 이러한 시기 중세 암흑기가 도래되어 유대인들은
거의 소멸에 가까운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즉 !! 유대인들에게 있어 "
암흑시대 = 중세"는 공격적인 투쟁기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당시 !! 십자가라는
강력한 힘에 굴복한 군소국가 들은 거의 Christianity로 개종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유대인들 또한 개종 혹은 추방을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200년간의
암흑시대에서도 기적처럼 유대인들은 살아남았으며∼Europe Ghetto의
담장이 허물어지고, 한 세대도 채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서구문명의 씨줄, 날줄이 되었다.
Yad Vashem...Holocaust
Adolf Hitler
Europe Ghetto
또한 어두운 Ghetto의 그림자 아래서
유대인들은 유럽의 사고방식을 재편성하는
국가의 수상, 산업가, 군 장성, 지성적 모임의
창립회원이 되었고, 근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20 C 유대인들이 전면에 들장하기 시작할 무렵
Europe 세계는 민족주의, 상업 / 산업제일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의 등장으로 극도로 혼란스럽게 느껴질
만큼 불투명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유대인들에게도
특수한 도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구 쪽에서 보자면 새롭고,
치명적인 Anti-Semitism(반-유대주의) 사상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예컨대 이러한 시기 미증유(未曾有)의 비극을
겪게 되었는데 Christianity 사회 복판에서 벌어진 인류사상
가장 끔직한 대학살 극 !! 바로 600만 유대민족 인멸 극이었다.
인류사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종족 참살,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소수자 유대민족으로서는 거의 종족 존속의 종말을
가늠하는 참화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최악의 민족 대참살 극의
상황을 민족 부흥의 발판으로 전환시킨다. 즉 !! Holocaust
비극을 실종된 민족 국가이기도한 New-Israel 건국(1948)으로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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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은 문명도 인간의 생명과
같이 일정한 한 번의 생명 기를 가지고 있고,
일반적으로 그 기간을 500-1,000년 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미 검증된 것처럼 유대문명은 오랜 시간 6개의
문명 속에서 6개의 문화를 가졌고,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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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Israel 민족의 출현은 이른바 "족장 시대"
혹은 "출애굽기 시대"에 출현한 것은 아니며 담론으로써...
중요성을 갖지만 후기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의
이행기에 출현 하였다. 통상적으로 Israel의 출현 혹은 기원으로
언급되는 시기이며,Israel ↔ Palestine을 병합 했던 것으로
간주되는 때이다. 실질적으로 Jews 들은 역사의 무대에 주위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등장하게 되었는데 역사 속에... 존재하며
그저 주변 문명세계를 기웃거리는 Outsider(유랑 생활자)이었던 셈이다.
Israel 백성의 고대사를 다루는 재료는 구약성서 중에 창세기로부터
여호수아 가지 총 6권(Torah 5경 + Joshua) 이다. 이것으로 어느 정도
까지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회상하는 직접적인 재료로서 여겨지며, 이러한 역사적인 윤곽은 성서가 제시
하는 역사와 일치한다. Israel의 종교는 그 역사와 함께 Canaan 땅에서
비롯되어지는데 Canaan 땅 외부의 역사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
Western Wall Jerusalem
Gaza
참고적으로 Old Israel 문화는... Israel이
Palestine People을 정복하였을 당시 여러
측면에서"정신적 백지 상태"였기 때문에 Canaan
선조의 문화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으나
Palestine 산악 지대에서 발굴된 후기 청동기 시대(Canaan),
철기시대(Israel) 사이에 단절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Abraham이라는 인물이 여호와(야훼)라고 알려진
유일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본격적으로 역사 속에
등장하게 되는데 거의 3,0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자신의
국가를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본다. 대략
기원전 4,500년 경 당시 전형적인 문명의 형태를 갖춘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였다. 하나는 Palestine 북동쪽에서 시작되었고,
또 다른 하나는 남서쪽에서 시작된 "셈족" 문명이었다. 또한
Mesopotamia & Egypt 문명이 상호 교류가 이루지기 시작한 때는
2,500년이 흐른 뒤의 일이며, 그 후 두 문명은 전쟁을 거듭하고
Palestine는 완충적인 지대로 남겨지게 된다. 현재 North-Iraq의
일부이기도 한 Mesopotamia 문명은 도시국가로 시작되었으며, 그중에
Ur, Susa가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위치를 점하고 있던 도시이다.
이러한 도시 국가 주변으로 왕국들이 형성되었는데 Mesopotamia 중앙을
가로질러 East-West로 선을 그어보면 왕국의 위치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North-Assyria, South-Babylon왕국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Babylon
왕국은 둘로 나뉘어 첫 문명제국이었던 Akkad 왕국이 위쪽에 있고,
아래쪽에는 Sumer 왕국이 있었다. 기원전 3,000년 경 Akkad에는 "Sargon
(사르곤)"이라는 셈족의 위대한 왕이 Sumer를 정복하고, Akkad-Sumer
왕국을 건설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문명권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도시를
건설하고, 법전을 만들며, 주색에 빠져 있을 때 Jews 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강력한 도구(설형문자)를 사용하여 Asia Minor의
문명을 농업 경제→상업, 산업 경제로 바꾸어 놓았는데
액면대로는 기원전 2,100년경에는 왕이면서 법률가이기도한
Hammurabi가 이 지역의 도시국가들을 통합하고, Babylon Empire를
건설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한다. 즉 !! 1,000년 후 Sinai Peninsula
(시내 산)에서 Israel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었던 Moses처럼 Hammurabi는
Babylon People 들에게는 Moses와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후 셈족이면서 호전적이었던 Assyria People들이 유약하고 부유한
Babylon에 도전하던 시기이었다. 이 때 "데라(우상 숭배자)"라는
인물(도시 자유민 추정)이 그의 아들 Abraham(+ Sarah) 그리고 손자이면서
Abraham의 조카이기도한 "롯"을 데리고, Babylon에 있던 국제 도시 Ur를
떠난다. 역사와 성경에서 기록된 "데라"는 노아의 아들 중 하나인
"셈의 후손"이라는 것 이외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어찌되었든지
"데라"는 일개 양치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이며, Euphrates River를
건넌 "데라"와 그 가족들은 성경에 Hebrew People으로 기록된 첫 번째 사람인 것이다.

그 뜻은 "강을 건넌 사람 혹은 강의 저편 사람"
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데라"와 그 가족들은 Ur에서
북서쪽으로 유랑하면서 현재의 Republic of Turkey 남부에
있었던 "Harran(하란)"으로 이주하며,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Ur를 떠났던 "데라(우상 숭배자)는 "하란"에서 사망
하고, 이곳에서 Abraham은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최초로 절대자 여호와(야훼)를 만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만남은
Damascus 가는 길에Paul... 예수의 환영을 본 것에 필적하는
것으로 Abraham의 경험은 Paul의 경험이 Christian들에게 그렇듯이
Jews 들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여호와(야훼)는 Abraham의 만남에서
하나의 언약을 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단 한 가지 약속만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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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Catarina Sinai
Ten Commandments
Moses가 유대인들을 출애굽 시킬 때...
Greece는 Middle East(Anatolia)의 평원에서
Aegean Peninsula를 침공하였다. Greece
역사는 Israel이 Assyria에 패망할 때인 기원전
7-8 C 경 Athens, Sparta, Corinth 같은 몇몇 주요
도시에서 시작되었다. 이루 같은 Aryan Type이기도 한
Persia Empire와 지속적인 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Battle of Peloponnesos(기원전 431년-기원전 404년)
Battle of Marathon(기원전 490), Battle of Salamis(기원전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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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선택받은 백성 중에 남자들은 8일 후
모두 Circumcision(할례)을 해야 하고, 개종한자도
개종 즉시 Circumcision을 해야 한다는 것과 약속→
Canaan 땅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이와 같은 언약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효하며, 유대교의 추진력이 되어
유대인으로 생존하려는 의지를 증폭시키게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언약 없이는 "유대인 = 유대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이러한 관념이
사라지고 유대인들이 유대인으로서 본질을 상실한다면 그들이 동화
되고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아무런 근거가 없다. 물론
이런 근거를 영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면화되어
왔지만 그 목표가 변질된 적이 없다. 그래서 유대 역사는 이러한
목표를 위한 연속적인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4,000년 동안
Abraham과 그의 후손들은 유목민으로서 방황하였으며, Canaan 땅을 유랑
하였고, 그들에게는 땅은 물론이고 그럴듯한 국가 형태의 그 어떤 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Circumcision(할례)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였고, 간혹
이웃 사람들은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비가시적인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서 아주 이상한 민족, 심지어는 정신이상 집단으로 매도되기도 하였다.

"십계명"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은 유랑생활을 마치고도 400년 후에 생겨났으나
이 모든 것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4 세대 동안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동아줄이 되었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
Abraham의 관념, 할레 의식, 앞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인간
제물의 금지"
또한 일단 유대인들이 유일신 관념을 수용하게 되면서
그들의 의식하지 못한 채 아주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애초에 그런 변화된 모습은 돋보이지 않았지만 점차로 다른 민족과
멀어지면서 부각되기 시작한다. 여호와는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고, 죽지 않기 때문에 부활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교도들에게서는 볼 수 있는 부활의 의식이 없다.
여호와는 유일무이한 신이기 때문에 신들 간의 신화적인 이야기도 없고,
결국 유대인들에게는 이교도들이 가진 신들 간의 전쟁이나 신의
서열이란 것도 없다. 여호와는 영적인 존재로서 성관계가 있을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다산(多産)의식을 거행하지 않는다. 한 가지 예로서 유대인
생활에서의 성관계와 Greece 문명이 지닌 성관계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자명하다는 것이다.

출애굽 → 광야 유랑 → 가나안 정착 → 토지점령 → 종족 투쟁

Abraham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Joseph을
포함한 "열두 아들"을 낳으면서 400년의... 유대 역사가 흐른다.
기근이 Egypt 북동부에 몰아닥쳐 Hebrew People들을 포함한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찾아 Egypt 쪽의 풍요의 땅 Nile River 삼각주
방향으로 몰려들었고,그 중심에서 Joseph이 지친 Hebrew People 들을
이끌고, Canaan 땅에서 Egypt로 집단 이주를 이끌게 된다.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 Egypt의 핵심 세력(왕조)은  Hyksos People로서
짧은 평화가 지나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며, 이들을 학대하기 시작하며,
노예로 삼게 되었는데 "Bible(성경, 聖經)"이외에 유대인의 방랑과 Egypt
유폐에 관한 근거를... 찾을만한 사료가 없지만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이러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했던 것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Joseph에
의해 유대인들이 기원전 16 C에 Egypt로 집단 이주되어 Moses 주도로 기원전
12 C에 "출애굽"하기 까지는 유대인들에게 400년의 침묵의 시간이었다.
물론 Joseph을 따라 모두 Egypt로 이주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Canaan
땅에 남겨졌으며 그들은 형제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자유민"으로서
생활을 영위하였다. 참고로 이러한 시기 Egypt는 이미 통일되어 있던 상태로 달력이
발명되고, 최초로 Papyrus 라는 종이가 만들어진다. 고대 왕국시대에는 Pyramid가 건축
되기 시작하였고, 항해 기술의 발달로 Egypt는 해상권마저 장악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러한 시기 유대인들은 위에서 설명한 중대한 역사적 사건
속에 매몰 되어갔던 것이다. Irony 하지만 "Moses 5경과 십계명"은 유대교의
근간이 되어주었지만 유대인들이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Renaissance 시대의 Christian = Michelangelo조각을 통해서뿐이다.
Sinai Mountain
Canaan...
Sinai Peninsula에서 유대인들은 40년 간 유랑을
하면서 구세대는 사망하고, 새로운 세대가 태어난다.
이곳에서 Moses는 유대인들에게 "십계명과 모세율법
(모세 5경)"을 전해주게 되었는데 "모세 율법"은 훗날 맞이
하게 될 "유대 민주주의"와 국가의 골격이 되었다. 임무를
완수한 Moses는 약속의 땅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는데 Moses에 대한 불명확한 가설들은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
Sigmund Freud의 경우 Moses와 "일신교"의 개념에서 모세는
유대인이 아니면서 Egypt 땅에 있던 Israel People, Canaan에 있던
 Hebrew People을 한 민족으로 융합시켰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도 모세가 Egypt의 왕자이었거나 유대인들에게 "일신교"를
가르치던 성직자였다고 주장하였다. 어찌되었든지 복잡한 설화 혹은
가설들은 여기서 그만 접고, 중요한 것은 출애굽이라는 성인의식에서 비롯된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기억할 필요가 있으며, 모든 남성들은
"할례"를 받았으며, Hebrew People 들은 Israel People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받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Torah(오경 /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임수기, 신명기)
라는 법률이 그들에게 공포된다. Torah는 당시 존재한 어떤 것
보다 미래지향적인 것이었으며, 커다란 발걸음의 시작이었다. 성문화 된
법률에 근거하여 법 앞에 평등이라는 개념은 셈족이 이룩한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2,500년경 쓰인...성문법
Sumer Law은 지구상에서 쓰인 최초의
성문법이지만 "모세 율법"이 지닌 정의 정신은
결여되어 있다. 500년 후 Sumer Law은 Babylon-
People에 의해 개정되고 보완되어 Code of-
Hammurabi로 변하지만 여전히 Torah가 지닌 민주
정신은 결여되어 있다. 성문법은 기원전 300년이
되어서야 Egypt People 들에 의해 적용되었고,
기원전 200년에 이르러 성문화 된 Roman Law가 제정된다.

Old Israel은 12 종족(12 아들)으 결합체로서
이루어진 민족이다. Israel의 모든 종족의 조상은
Jacob인데 그는 Israel과 동일 시 되는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12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들이 종족의
조상 이었으며, 그 아들의 이름으로 족속들의 명칭이
부여되었다. → 구약성서가 내세우는 전통적 가치관 성립 !!
신약에서는 12 사도의 정신에 따른 새로운 Israel의
표현이 강조 된다. 역사 변화 과정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았던"12"라는 숫자, 동맹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종교적
이고도 제의적인 성격 부각 !! 고대 국가 이전의 상황에 대한 일치성 

기존의 가나안 땅에 있던 동맹체 + Egypt
Sinai Peninsula(출애굽) 이후 합류한
동맹체제가 혼합되고, 마침내 Israel이 되었고,
구약성서가 되었던 시기까지 전개된 것이다. 기원전
1220년 처음으로 Israel이라는 명칭이 언급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서 Israel은 하나의 국가(집단),
혹은 장소로 불렸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 !!
탈출 사건의 시기로 추정되는 이른 때에 언급되기 있었기
때문에 Israel의 가나안적인 역사가 사실 상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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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avaggio - The Sacrifice of Isaac
Torah-Yoga
Moses Baby
Caravaggio Salome London
따라서 "모세 율법"은 진정한 의미에서 첫...
사법권을 가진 성문법이고, 포괄적인 인본주의,
정의, 민주주의 정신으로 이전까지 있었던 다른
법제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이러한 법체계로
유대인의 특질이 형성되었으며, 유대의 사고방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여 주변 이웃 국가들과의 거리감을 부각시키게
되었다. → 국가 개념과 법정신 강조, 인간과 인간, 인간과 국가, 인간과 신

즉 !! "모세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한 국가를 예견하고 있으며,비록 역사적으로 중대한
시점에 유대인들은 유목민이었지만 "모세 율법"은 유목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더불어 "모세 율법"은 개인의 권리가 절대적으로
국가의 이익에 종속토록 명시하지 않았고 가족단위가 아닌 국가의
본질을 수호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예언자들이 개입하기
이전까지 800년간 적용 될 수 있는 정부 형태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모세 율법"이 최초로 종교와 국가의 분리 원칙을 세웠고, 이러한 원칙은
3,000년의 시공간이 속에서 18 C 계몽주의 시대가 돼서야 역사상에 명확하게
등장하게 된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유대인들은 그들의 약속의 땅에 정착되지만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곳은 길고 가느다란 땅이었으며, 결국 이와 같은
선택으로 말미암아 여러 번 거듭하여 유대인들은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노예로
팔려갔으며, 이국땅으로 유폐되는 대가를 지불하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곳으로부터 다시 나타나 새로운 땅을 건설하였고,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강조 하지만 Israel의 역사는 Mesopotamia
지역에 거주하는 Abraham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민족 공동체로서 Israel의 실질적인 역사는 그들이 Moses의
인도 하에 Egypt를 탈출한 이 후 출애굽기 사건에 의해 출발
되어진다. 출애굽 공동체는 40년간 광야에서 유랑생활을
거친 후 약속의 땅으로 알려진 Palestine 지역에 집단 이주하여
그곳에서 거주를 시작하는데 Canaan 땅에 들어와 정착하여 점차로
강성해지다가 명목상에 불과 하였지만 Saul & David에 이르러
국가를 형성하는 기간에 절정을 이룬다. 반면 주변 이웃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몰락해가고 있었다. 이 말은 즉 !! Egypt에 해당한다. 잠시 !!
살펴보면 고대왕국(2850-2200), 제1의 중간 시대(1780-1570), 중간
왕국(2000-1780), 혹은  Hyksos 시대(1780-1570)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 왕국(1570-1200)이다. 그 다음에는 후기 시대와 Ptolemy 시대가 된다.
Egypt Hyksos는 중간 왕국 이 후 부터 신 왕국에 이르는 기간 Egypt를
점령한 족속이었는데 역시 이때 Syria Palestine 지역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투에 의한 정복이라기보다 은밀한 침투와 토착
민족을 약화시키는 방법 사용하여 잘게∼잘게∼도마뱀 고리 자르듯이 점령하였다는 것이다.

Hyksos = Semites + Asian Type
형성은 Canaan 땅에 유대 이전 민족이 형성
된 것을 직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으로 말과 전차를
이용한 전투 방식을 취한  전형적인 유목민족이다. 이들은
Canaan 땅에 귀족 계층 성립(기사중심의 사회제도)시키고
후기 Israel의 지파(12 지파 공동체)들이 Canaan 땅을 정복할 때
토착민의 억센 왕들과 싸웠다면 바로 그들이 "전차와 투사"
대변되던 Hyksos 전사들의 후예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점을
Israel 고대사에 있어서 아주 민감하게 관계되는 부분이다. 이 후
Egypt의 독립(신왕조 성립) 즉 !! 민족적 해방은 "Thebae(테베)"에서부터 시작된다.
Old City Jerusalem
Military...
Mahane Yehuda Market In West Jerusalem
Kamose(카모네) & Ahmose(아모네) 왕은
신왕조의 창건자가 되었고, 새로운 왕조는 정식으로
Thutmose(투르모세 3세), Amenophis 3세(아메노피스),
Amenophis 4세(1377-1360)왕에 의해 지배되었을 시기
Hyksos의 유산이기도 한 Syria-Palestine도 합병하였다. 
중앙집권적 체제가 아닌 봉신들의 기사 적 독립 세력이 왕성한
시대 신 왕국의 몰락에 이르기 전까지 이후 Israel을 휩쓸던
Egypt 세력도 사라질 시기∼결과적으로 Canaan-Syria 땅에 정치적
공백기가 생기고 이전 권력의 공백기에 유대인들이 단합하고
세력을 모아 특수한 국가를 건설한다. 이러한 국가가 결과적으로
출애굽→광야 40년→Red Sea를 건너→Joshua에 의해 "약속의 땅"으로
인도 되었던 사실은 온전하게 그의 몫이었고, 이러한 시기 기존의 
Canaan 족속들을 몰아내었던 유대인들은 나름대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Canaan 족속들의 저항마저 사라질 즈음
비로써 훗날 Palestine이라고 불리는 경계선이 희미하게
나마 형성된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원주민의 귀환"이었던
셈이었다. 결과적으로 400년 간 비워 두었던 땅에서 Egypt에서
돌아온 Israel People들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여 남아있던
Hebrew People들과 합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불완전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고 외부의 충격에 의해 갈라질 수도
있었던 "정치적 화합"이었을 뿐이다. 유대인들이 거주한 땅은 Egypt를
연결하는 교량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Israel 정착지가
Asia-Africa를 잇는 땅임을 뜻하게 되었고, 이점에 있어서 Israel이 거주
하게 된 Palestine 지역은 양대 문명과 두 대륙 사이에 중간 통로
역할을 하던 곳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Israel 민족의 역사가 이제까지 설명한 지역과 어떤 형식
으로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인데 Israel 초기 역사에 속한 Abraham &
Moses가 Mesopotamia 문명과 Egypt 문명에 친숙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그렇고, Israel의 Canaan 정착이 Syria-Palestine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다. 정착 이 후 Israel 역사는 바로 이러한 3개의
문화권을 중심으로 움직여 간다. Joshua(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Canaan 땅에
들어선 Israel은 유목 문화권에서 농경 문화권으로 점차로 옮겨가면서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한다. 그 와중에 그들은 여러 신 그중에서도 풍요를
상징하였던 폭풍의 신 Baal(바알 신) 혹은 천둥과 번개의 신 Hadad(하닷)을 섬기에
되었는데 이 시기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환경 변화는 정치 형태의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Canaan에 정착한 유대인들은 더 이상 유목민이 아니었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는데
그러한 제도가 Shoftim(쇼프팀)이라고 불리던 사사이었고 이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간주되었다.
새로운 국가는 "12 지파"로 구성되며, 각 지파는 지방자치 정부와 같이
장로가 지배 하였지만 마치 주정부 밑에 연방 정부가 있듯이 장로 위에는
사사가 있었다. 사사는 전시에는 통합 사령관이었고, 평화 시에는 국가의 수반으로서
작동되었다. 사사제도는 200년간 지속되었지만 한 가지 약점을 노출 하였는데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체제는 유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어떤 민족보다 유대인들의 확신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매번의 위기 순간
마다 구원자가 있을 것이라고 느꼈고, 이러한 구원자에 대한 개념은 앞으로 올 구세주
개념의 뿌리가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뚜렷한 지도자를 가지지 못하였던
이 제도의 결함으로 안정적으로 국가가 발전할 수 없었다는 사실인데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 상황은 분명하게 강력한 중앙 집권 정부를 필요로 하게 된다. 더구나  이민족의
침략 특히 Sea People(바다의 민족)으로 알려진 Philistia(블레셋) 족속의 압박과
Jerusalem이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Jebusite(여부스)족속 들은 짜증나게 할 정도이었다.
Qumran-Pottery ... Biblical Texts Found in Qumran
Ark of the Covenant
결국 Israel은 유대문명에 오늘날 입헌군주제와
같은 형태의 강력한 유대 왕정을 성립시키고야 말았다.
또한 "12 지파 공동체"에 의해 세워진 입헌 군주제는
세계사에 있어서 초유의 일이다. 왕정 초기는 명목상에
불과 하였지만 Saul이 첫 번째 왕이 되었고, 실질적으로 왕이라고
인정되었던 것은 David에 의해서이다. 간략하게 표현하면
David에 의해 전쟁을 통해서 왕국이 확장되었다면 그의 아들
Solomon 시대에는 평화(외교정책)로 국가를 수호하였다. David &
Solomon
시대는 신흥국으로서 단기간에 주요 군사 강국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David가 비록 전사이지만 유대인들에게 그의
명성은 전쟁과 무관한 3 가지 업적으로도 압축된다. Jerusalem을
Palestine의 정치적 수도로 하였고, 성전을 준비하며, Ark of the-
Covenant(하나님의 법궤)
를 Jerusalem에 안치함으로서 Jerusalem을
상징적이고 이상적인 수도로 만든다. 그렇지만 성전의 건축이나
법궤의 안치는 Solomon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당시 David에 의해 건설된
유대 왕국은 Euphrates River→Aqaba "만"까지로 현재 Israel의
5배에 해당하는범위를 말한다. 그렇지만 Palestine은 다윗 왕 때에도
강력한 중앙 정부를 갖지 못하였는데 North-Israel 왕국과 South-Judah
왕국이 대립 상태에 있었다가 Solomon 사 후 남북 두 왕국으로
완전히 갈라서 분열됨으로써 Israel 역사는 통일 왕국시대로부터 분열왕국
시대로 옮겨간다. North-Israel 왕국은 여러 차례 "쿠데타"의 아픔 속에
방치 되었고, Assyria Empire(기원전 722)에 의해 붕괴되었으며, David 왕조를
꾸준히 이어가던 South-Judah 왕국은 Babylon Empire(기원전 587년 경)에 의해 멸망한다.
Brit Milah ...Circumcision
Jerusalem Dome of the Rock
Caravaggio - David & Head of Goliath
참고로 ...Philister(블레셋)
족속들이 Palestine에 몰려온 것은
Aramaer(아람)족속이 이동하던 때와 같은
시기로 보는데 이러한 해양 제국의 이동은 폭넓게
이루어진다. Egypt→Creta(크레타)까지 파급
되었고, 바로 이들이 Creta Island에 상륙하여 그곳에서
Minoan Civilization(1100)을 박살내고, Egypt를
공격하지만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Egypt에 밀려 Palestine 남서부 해안에 해안 평야까지 이주되었다.
그 후 Egypt가 몰락하면서 Philister 족속들은 완전한 자주적인
위치에 올라섰으며, 아주 오랜 시간  Israel을 위협하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주목되는 것은 입헌군주제(절대군주 표방) 지상
왕권에 맞서 Yahweh의 왕권을 대변하던 계층(예언자)이
생겨났다는 사실로서 그들이 주도한 예언 운동은 왕정 시대가
끝날 무렵 까지 지속되었다. 왕정이 붕괴된 이 후로 Babylon
포로시기와 Persia Empire의 통치시대에 이르며, 서서히 약화되면서
"묵시 운동"으로 성격이 뒤바뀌게 되었다. Israel 민족이 공식적으로
섬기던 신의 이름은 유일 신 Yahweh이며 Yahweh는 자연계에 있는 어떤
힘이 아니라 자연을 포함하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고 지배하는 신이면서
동시에 자연계에 대하여 독립성과 초월성을 지닌 신이요 역사 안에서
활동하면서 힘없고 약한 자들을 구원하는 역사의 "주"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들은 "구약 성서"가 강조하는 규범적인 Yahweh
신앙과는 반대로 주변 세계의 "다신교적인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부터 유목 이동 문화에 익숙해 있던
Israel 백성은 풍요와 다산을 추구하던 신에
의탁하였고, 깊숙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 같다. 정착
초기 Israel는 주변 세계에 비하여... 종교적으로는 완전
하지 못했던 것이다. 더구나 Solomon 시대 왕은 농경
사회에서 상업적 사회로 급격히 변화를 추진하고 도시들이
건설되며, 교역이 증가 추세를 보이면서, 산업이 번창하지만 도시로
몰려드는 수많은 땅 없는 국민을 소화시킬 수 없었고 치명적으로
사회구조의 심각한 분리 현상과 미래에 도래되는종교적 불협화음의
씨를 뿌리게 된다. 그의 침실에서 부터 Palestine 전체에 우상
숭배가 뿌리를 내리고, 민족 간 결혼과 일부다처제가 보편적 현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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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ept It’s in Israel
Masada room
Mount Gerizim
Turning Point
Samaria People이 과연 유대인이냐 하는 문제는
개념에 따라 복잡한 논의가 될 수도 있다. Samaria-
People은 좁은 개념의 유대교 속에는 들어 갈 수 없다.
이들은 우선 Jerusalem 성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Moses 5 경 이외로는 구약 성경도 인정하지 않는다.
"모세 5경"에 Yahweh가 성소로서 "택하신 곳"이라는
구절이 21번 나오지만 Jerusalem이라는 지명은 나오지 않는다.
출애굽 이 후 "약속의 땅"에 들어와 최초로 증거 돌을 세운 곳이
Gerizim Mountain, 881 m이므로 성소는 "Gerizim Mountain"
일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Abraham이 이삭을 번제로 바친 곳이며,
Joseph의 유골이 유언대로 묻힌 곳이고, 신명기(11 : 29)에 나오는
"축복의 산"이다. Gideon의 아들 요담이 복수의 저주를 외친 곳(사사기 9 : 7)도
Gerizim Mountain이다. Jerusalem은 Israel역사에서 "다윗" 이 후에나
등장하는 곳이다. 현재 Samaria People은 700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들은 대부분 Gerizim Mountain
주변의 피난 촌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은
Old Hebrew Language로 기도를 하지만
Arab Alphabet를 사용한다. 혈통이 섞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한번 유전병이 생기면 종족이
멸망할 수도 있다. 요한복음 4장 일화는 예수 시대에
이미 !! 유대교를 거부하는 Samaria People을 사랑스런
이웃으로 대한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공포이었고 파격이었던
셈이다. Samaria 5경은 유대인들의 Torah와도 다른 또 하나의 판본이다. 

The Gospel of the Hebrews
2 C 전반에 성립한 희랍(希臘) 문화권의
유대인들의 복음서(히브리 복음서)
"너의 형제를 사랑으로 돌볼 때만이 너는 기뻐할 자격이 있다."

"예수 운동"의 Sectarian Unity
(당파적 성격)을 초대 교회의 유대인
Community의 당파적 성격을 확대하기
위하여 신명기, 레위기의 율법적인 명제의
도입이 이뤄졌고, 또 다시 유대인 Community의
당파적 성격을 타파하기 위하여 Samaria-
People의 무조건적 베풂이 이웃 사람의 전범으로
제시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계명이 이방 선교의
보편주의적 명제로 해석되어 이웃 사랑이 신에 대한
사랑과 동일한 정언 명령으로서 재해석된 것이다. 사랑은
용서이며, 베풂이다. 이것이 Christianity 발전사의 긍정적인 흐름을 주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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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ada
Kippa...
Turning Point
Masada ... Masada ... Masada / Dead Sea - Qumran - Jericho
지금까지는 위치도 몰랐고, 쉽게 알려진 곳은 아니다.
969(7명 생존)명의 비극적인 최후가 있었던 곳으로 오늘날
Israel을 지탱하는 두개의 기둥 중 하나로 초등하교 학생들의
졸업식이 이곳에서 진행되기도 하고, Israel Army의 총기 수여식과
기갑부대 훈련생은 수료식을 이곳에서 하는데, 절벽 길을 걸어서
올라와 구호를 외친다. Masada는 두 번 다시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
이 정도면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젊은이라면 반드시
언제고 한번쯤 들렸을 정도로 의미가 상당한 곳이다. Israel의 신앙의
성지가 "통곡의 벽"이라고 한다면 이곳은 Israel을 지키는"호국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Josephus(요세푸스) 유대계 역사가에 의해 구체적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기록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고 있다. 당시 !! 상황에 대해 구성해 보면
Roman Empire의 지배하의 Jerusalem(64) 있었다. Jews의 종교와
신앙 정서를 수용하지 못했던 Roman은 민심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는데
마침내 동요가 일어나고 분노가 폭발 하여 Jerusalem 유대인들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Jerusalem에서 시작된 반란은 Israel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당황한 Roman은 대규모 군단을 파견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에는 압도적으로 군사적 우위에
있었던 Roman Army에 의해 지방 반란세력이 소탕되고,
Jerusalem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포위 상태가 지속되면서
점차로 Jerusalem 성안 사람들은 식량과 식수 부족으로
굶어 죽거나 그 안에서 인육 까지 먹는 참혹한 지경에 처했는데
여기저기서 강도가 들끓고 곳곳이 불길에 휩싸이는 등 화려
했던 Jerusalem은 졸지에 아비규환 속에 묻힌다. 이 때 일단의
무리들이 Jerusalem 성을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Jerusalem에서 반란을 주도하였던 인물 중에 "Elazar"는 한밤중에
철통같던 포위를 꿇고, 무려 969명을 데리고 탈출한다. 그들은
바로 Herod(헤롯)이 만들어 놓은 Dead Sea 바로 옆에 있는 마사다로
향하게 되었다. Masada는 헤롯이 유사 시 유대인들의 폭동을
일으키면 피신하기 위한 도피처로 Negev Desert 가파른 돌산 꼭대기에
있는 철옹성이었다. 탈출 사실을 뒤늦데 접한 Roman Army는
맹추격 하였으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안에서 문만 잠그면 절대 밖에서는
들어 올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이었다. 이 때 Roman Army 지휘관이 생각해
낸 것이"경사로" 이었다. 작전은 Masada 정상 까지 경사로를 쌓은
다음 공성전을 전개하여 성을 박살내고, 그들을 모두 죽이거나 살려서 포로로
잡아들인다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작전을 위해서 40 ℃ 웃도는 Negev Desert
사막의 뙤약볕 아래서 흙을 실어다 사막에 또 다른 성을 쌓듯이 경사로를
쌓아간다.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유대인들은 "뜨거운 물과 돌"로 저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공사는 중단되고, Roman Army들은
이제는 이미 포로가 된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경사로를
쌓아간다. 결과적으로 동족에게 뜨거운 물과 돌로 공격을
할 수 없었던 성안의 유대인들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 경사로는 완성되어 있다. 이제 남겨진
일은 Roman Army의 공격에 죽는 일밖에 없는 듯하였다. 그런데 
Roman Army 최고 지휘관은 어쩐 일인지 모르나 바로 공격을 취하지
않고, 다음날 공격할 계획을 수립한다. 이것이 969명이 집단 자살로
이어지는 실책이 되었다. 항복 그리고 항전 그리고 죽음만이 남겨진 것이다.
이들이 자살한 방법으로 알려진 것은 칼로 목을 그어 죽는 것이었는데
먼저 10명의 제비뽑기 대표자를 뽑아 가족 단위별로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가서 칼로 목을 벤 다음 마지막으로 다시 제비뽑기를 하여 한명만 남긴다.
그 한명이 넘지 아홉을 같은 방법으로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법이 채용
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역사에 길이 남겨진 집단 자살 사건으로 70년에 이루어졌다.

이제 새벽이 오면 우리의 저항은
끝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금 갖고 있다.
우리의 손이 자유롭고 아직도 칼을 잡을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우리의 적에 의해 노예가 되기
전에, 우리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자유인으로서 이 세상을 떠나자.


이렇게 해서 969명이 죽게 되었으며, 아마도
인류 최초의 종교적인 이유가 성립된 집단 자살로 볼 수 있을 듯싶다.  

Jewish War(유대전쟁) 최후의 비극의 격전지
높이 410 m, 산봉우리 길이 600 m,
너비 320 m로 넓은 평지로 되어 있는 곳에
5.4 m의 성벽을 둘렀으며, 그 성벽에 38개의 망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곳을 오르는 방법은 2000년 전
그곳에 오르던 969명이 갔던 길을 따라 올라서는 것과
Roman Army에 의해서 쌓아 올려 진 경사로를 타고 가는 길과
오늘날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방법 딱 !! 3 가지이다. → 대략 30분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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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And Israel at the Point Mugu Sea Range
Circumcision Central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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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ra Haza
You've Got A Friend...

by Beercook | 2007/01/06 21:00 | Storytelling Is... | 트랙백 | 핑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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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ay To Day : The.. at 2011/03/30 01:41

... 못한다. 그 이유는 페르시아 종교 자체가 갖는 민족적인 색채 때문이었다. ...State of Israel ↔ Jerusalem, Jewhttp://redbeans.egloos.com/776853Diaspora ↔ Ghetto ...Talmudhttp://redbeans.egloos.com/1853928...Sinai MountainGreek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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